오랜만에 일 학년 담임을 해서 그런지 몇 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아이들이 그렇게 똑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도하기에 좋은 점도 있지만 날이 갈수록 약아지는 아이들 탓에 선생님들은 그 만큼 더 힘들어진다.
하루하루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긴장해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 많다. 그래서 나 같은 교사들은 운전기사처럼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하루종일 되뇌곤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어찌 말리랴. 네 시간을 못 참고 마지막 시간에 난리를 치다니….
"선생님, 찬현이 자리에서 냄새나요" "어휴, 진짜 지독하네" "어디, 어디…"
오징어 냄새를 맡은 강이지처럼 코를 킁킁대며 찬현이 주위에 모여드는 아이들. 한쪽에서는 벌써 `찬현이는 ×쌌대요'하며 장단 맞춰 합창을 하고 당사자는 창피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엉거주춤 앉아 있다. 재판관인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배에 힘을 잔뜩 주고 교탁을 힘차게 탁탁 두드렸다.
"너희들, 자리로 다 돌아가 앉아. 누가 찬현이를 놀리니"
이렇게 분위기를 잡은 나는 "오늘 아침 선생님은 찬현이 어머니 전화를 받았어요. 밤새 배탈이 심해서 학교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했는데도 결석 안 하려고 나온 거예요. 조금만 아파도 학교에 안 오는 친구도 있는데 찬현이는 정말 착한 아이예요. 그런데 누가 놀려요. 놀린 사람 이리 나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근심스런 표정으로 찬현이의 이마를 짚으며 "열은 없니? 아픈데 참지 말고 집에 가요. 그리고 친구들, 아파도 학교에 나온 용감한 찬현이에게 박수를 쳐주자"라고 말한 후 박수를 막 쳤다. 그랬더니 아이들도 어정쩡 따라서 박수를 쳤고 부끄러워 고개 숙인 찬현이는 의기양양해서 집으로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찬현이는 아침에 지각할까봐 볼일을 못 보고 등교한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참다참다 1교시에 실수를 하고는 4교시에 들통이 난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 동안 얼마나 가시방석이었을까.
그런데 그 일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순간 내가 찬현이에게 박수를 쳐 줄 생각을 한 일이다. 아이들도 깜빡 속인 멋진 얘기를 꾸며내 오히려 찬현이가 영웅이 되도록 한 내 순발력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통하다. 어떻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까. 나의 천재성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