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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학교 정규 교육과 연계된 영재교육 실현해야

⑥ 한국 영재교육의 발전 과제

천재양성 신비교육도, 엘리트혜택 불평등교육도 아냐
美, 정규 학교교육과 통합된 ’협력형 개방체제’ 우세

국가수준 전문화된 ‘영재교육연구원’ 설치・운영 절실
학교・지역사회 협력해 창조적 교육공동체 건설해야 

영재교육의 관점 : 공리주의와 인본주의=지난 세기말 우리는 혹독한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었다. 국가의 총체적 위기 진단이 요구되었고, 교육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사회가 위기와 불안에 직면하였을 때, 항상 교육은 새로운 가치와 과업을 요청받았다. 보편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당장 절박한 것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 줄 수월성 교육이었다. ‘1명의 영재가 수십 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감각적 구호는 순식간에 국민 정서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그와 같은 접근을 ‘공리주의 영재 교육관’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1957년 구(舊)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충격 받은 미국이 수학, 과학 중심의 영재교육에 집중 투자를 시작한 것도 좋은 예이다. 영재 교육의 동기가 실용주의적이고 수단적이며 전략적인 가치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재교육 초기 단계의 국가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영재교육은 국가 재건이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에 쓸모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수단이 아니다. 국제 경쟁에 살아남을 교육 전사(戰士)를 양성하는 훈련기관은 더더욱 아니다. 교육은 그 종류와 유형을 막론하고,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31조). 교육 기회의 균등은 동일한 교육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에게 동일한 학습 내용과 속도를 요구할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어느 교과의 수업이든지 교실에서는 두 개의 뚜렷한 소외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상위 3~5% 이내의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 만약 지금까지 학교 교육 제도가 지적인 도전심이 강하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학생들의 발달을 억제하고 가로 막아 왔다면, 그 장애물을 과감히 걷어 내야 한다. 이를 ‘인본주의 영재 교육관’이라 한다. 선진국의 영재교육은 이미 이 단계까지 성장해 왔다. 영재교육은 천재를 겨냥한 신비한 교육이 아니며, 소수의 엘리트만이 혜택을 누리는 불평등한 교육도 아니다. 오히려 일탈된 학교 교육이 교육 본위(本位)의 존재를 찾아 가는 노력인 것이다. 

영재교육의 박람회장, 미국=미국의 영재교육 서비스는 워낙 다양해서 마치 박람회장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소수의 특수학교를 중심으로 한 ‘분리형 폐쇄 구조‘가 흔하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규 학교교육과 통합된 ’협력형 개방체제’가 우세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소수 엘리트 교육이라는 사회적 비판을 완화시키며, 영재교육 예산 지원에도 유연성을 갖게 해 준다. 편의상, 미국의 영재교육 형태를 ‘학교 내’와 ‘학교 바깥’ 프로그램으로 구분해서 정리해 보았다.<그림 참조>



우선, 전자의 프로그램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심화 학습과 속진 수업이 정착되어 왔다. 차별화 교실수업, 체험위주의 심화학습, 수준별 선택과목, 우등생반(Honors Class), 풀 아웃(pull-out), 조기 입학과 졸업, 방과 후 특별활동, 월반(과목 혹은 학년 수준), 교육과정 압축, AP(대학학점선수제도)나 IB(국제학력인증제)의 개설 등이 대표적 운영사례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AP제도는 전국 약 60% 이상의 고교들이 한 과목 이상을 개설하고 있을 만큼 널리 적용되는 속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규 학교 바깥에서의 프로그램은 별도의 독립형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경우와 상급 학교와 협력하는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일리노이수학과학고(IMSA)와 같이 특정 분야 영재들을 위한 기숙사형 특수 고등학교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특목고와 매우 흡사한 형태이다. 이 밖에도 마그넷 스쿨, 명문 사립학교, 일부의 차터 스쿨 등이 이에 속한다.

한편 대학이나 연구소, 지방정부나 각종 사회단체들은 분야별 영재 캠프와 사사지도(mentoring)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전국 어디에서나 ‘주지사 학교’(governor's school), 다양한 영역의 주말 혹은 방학 중 캠프들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www.hoagiesgifted.org 참조). 학기 중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대학 강좌를 수강하는 이중 등록제도(dual enrollment)는 널리 적용되는 방식이다. 가령,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9-12학년 영재들에게 여름방학 동안 대학 강좌를 수강할 수 있게 하는 속진제도(PACE, ACE)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스탠포드대의 원격영재교육 프로그램(Educational Program for Gifted Youth)은 유치원~12학년용으로서 세계 35개국의 5만 명 이상이나 참여했을 만큼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우수영재들은 대학 조기입학제도(Early Entrance Program)를 많이 이용한다. 단지 고교 1년을 단축하는 정도가 아니다. 대학에 별도의 영재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고교를 생략하고 입학할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신입생 전원을 9학년 이상의 영재로 선발하는 사례도 있다(www.earlyentrance.org 참조).

이처럼 미국의 영재교육은 정규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형태의 개방적인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어 왔다. 물론 주마다 사정은 크게 다르다. 조기입학이나 이중 등록을 허용하지 않는 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경향으로 보면, 교육영역이 수학이나 과학에만 편중되어 있지 않으며, 교육청이나 학교만의 책임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학을 포함한 지역 사회의 모든 가용한 자원들이 유기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갓 걸음마 단계를 벗어난 한국 영재교육의 미래에 좋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창조적 영재교육공동체의 건설=정부의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이 발표된 후 5년 만에 영재학생은 4만 명(0.5%), 교육기관은 450여개(영재학급 포함)로 늘어났다. 2010년경에는 8만 명(1%)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교육부 2007).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교육청 주도, 캠프 위주, 그리고 특정 소수 교과 중심’의 획일적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영재교육의 양적인 확산 못지않게 내실을 다지는 질적 성장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이다.

필자는 인본주의적 영재교육 철학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영재교육이 지향할 몇 가지 방안을 구상해 보았다. 그것은 영재교육의 의식, 제도, 운영을 포괄하는 총체적 변화를 가리킨다. 우선, 영재교육이 소수 엘리트 양성이나 일류대 진학의 첩경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경계해야 한다. 학부모들이 섣부른 기대감으로 무턱대고 자식을 내몰다 보면, 득(得)보다는 실(失)이 커질 수도 있다. 영재교육은 훗날 사회가 써 먹을 욕심으로 소수의 인재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일이 아니다. 마치 물을 만난 고기가 활력을 되찾듯이, 그것은 뛰어난 아이들이 진정한 학습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종의 지적(知的)인 배려이다.

둘째, 현행의 분리형 영재교육은 통합형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독립된 영재학교, 영재교육원 혹은 학급을 설치하는 데 주력해 왔다. 매일의 학교생활 속에서 영재교육 혜택을 경험할 수가 없다. 어쨌든 주말이나 방학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원인사 초빙 수업, 방과 후 특기 활동, 조기입학과 졸업, AP제도, 대학학점이중등록, 월반, 수준별 과목 선택 등 심화와 속진의 방안들은 매우 다양하다. 학교 시설이나 제도를 탓하면서 먼 산만 쳐다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제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제는 학교의 정규 교육과 연계된 영재교육을 실현해 내어야 한다.

셋째, 영재교육의 형태와 함께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전환해 가야 한다. 영재성의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며 창의성이나 고차적인 사고 능력에 관련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시ㆍ도 교육청의 영재교육은 수학ㆍ과학에 편중해 있으며, 교과 속진학습의 형태에서 국한된다. 앞으로 예능, 어문학, 지도성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격교육이나 멘토십과 같은 탈학교 모드의 교육 방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APEC 멘토링 사업이나 한국과학영재학교의 R&E 프로그램은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넷째, 대학이 초ㆍ중등학교 영재교육의 견인차 역할을 주도해야 한다. 참신한 영재교육 방안들이 많더라도 대학이 이를 적극 수용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조기입학이나 특별전형제도와 같이 입학 절차를 더욱 유연화 해야 한다. 대학이 학생의 스냅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사진 앨범’을 평가하겠다는 희생을 천명할 때 비로소 전인교육의 희망이 생겨난다. 또한 대학은 AP 학점이나 중ㆍ고생 대학 강좌 이수 허용은 물론이고, 청소년 영재 캠프나 학부 과정의 대학 자체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 수준의 전문화된 영재교육연구원의 설치, 운영이 절실하다. 대학이나 교육청의 영재 교육이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되려면, 영재 연구와 정책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영재교육 법령의 검토, 영재교육 표준의 설정, 통계의 관리, 교원 자격과 연수, 영재판별, 국제교류 등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미국의 국립영재교육연구원(NRCG/T)이나 국내의 국립특수교육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등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와 지역사회가 창조적인 교육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분야별 전문가들이 영재교육을 위해 활발하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교육은 학교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변에는 무한의 교육 자원들이 존재한다. 대학, 기업체, 연구소, NGO, 심지어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학교의 소중한 교육 동반자들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인 재정 후원자로 나서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교육 문화의식도 빠르게 성숙하고 있다. 그 만큼 한국 영재교육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이제 ‘학교가 영재아를 어떻게 가로 막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들의 과학적 해답을 상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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