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이 많이 걱정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흡연 문제이다. 흔히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는 담배를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 피웠다가 아예 기호품으로 여기는 것이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다.
담배는 남미 페루가 원산지로 임진왜란 때 일본인에게 조총술을 가르쳤던 포르투갈 인을 통해 들여왔거나 광해군 무렵에 일본에 갔던 사신들에 의해 건너온 것으로 추측된다. 담배가 들어올 당시 너무 귀한 물건이기에 가격이 은값과 같을 정도였다. 담배가 처음 들어왔을 때 ‘담파고’ 또는 ‘담바고’로 불렸는데 영남지방의 민요에 ‘담바고 타령’이 있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에 관한 첫 기록은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들어있다.
오늘날 어른 앞에서는 피지 못하는 담배를 광해군 이전까지는 남녀노소,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서로 어울려 피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늘날처럼 어른 앞에서 피지 못하게 된 것은 광해군(재위 : 1608~1623)이 조회를 주재하다가 신하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고 “연기가 맵습니다. 앞으로 내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하십시오”라고 한 마디 싫은 소리를 하는 바람에 윗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으로 담배 예절이 굳어졌다고 한다. 그 후부터 지위가 높거나 연령이 많은 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관습이 생겨났다. 정조는 애연가로 유명한데, 담배를 예찬하는 시를 지을 정도였다.
더울 때 피우면 더위가 물러가고/추울 때 피우면 추위를 막아주고/식사 후에 피우면 소화를 도와주고/잠이 오지 않을 때 피우면 잠이 오며/화장실에서 피우면 냄새를 없애 주누나
조선시대엔 담배를 궁녀들이 심심풀이로 피울 정도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또 여자들의 흡연 인구가 남자들 못지않았다고 한다. 연비(煙婢)라고 하여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든 여자 노비가 양반 마님들의 나들이에 뒤따를 정도로 여자 흡연은 흔히 볼 수 있었다.
고종 때 유행했던 ‘담바귀 타령’을 보면 처녀가 담배를 피우고 바람난 대목이 나온다. 이를 보면 여성흡연이 어린 나이의 청소년층에까지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동 화로 백탄불을 이글이글 피워 놓고/담바귀 한 대 먹고 나니/목구멍 속에 실안개 도네/또 한 대 먹고 나니/황룡 청룡 꿈틀 대는데/어느 망나니 날 찾는구나/춘아 춘아 옥동춘아/냉수 한 잔 주려무나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도덕률에 매어 살았던 옛 여인들에게 담배는 스트레스를 푸는 기호품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