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문화재 보존과 보호를 위한 투자에 인색했는가를 깨닫게 됐다. 문화재가 민족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문화재의 중요성 및 보호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6일 교총 소회의실에서 열린 ‘문화유산 보호교육 활성화 방안’ 좌담에서 현장 교원과 전문가들은 문화재 교육의 현실과 문제점, 대안에 대한 의견을 쏟아냈다. 이날 좌담은 교총 교육정책연구소 이찬우 소장의 사회로 권선태 서울 언북초 교사, 한춘희 서울 천동초 교사, 박종선 서울 미성중 교사, 박성윤 서울 중동고 교사, 이동원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허권 서울청소년문화교류센터 소장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이동원 “초등교육과정은 충분, 수업통한 실질적 질 고양 필요”
한춘희 “교수・학습자료 거의 없어, 교사 연수 절실히 요구돼”
권선태 “교과・특별・재량활동 시간 연계해 주제 통합적으로 지도해야”
박종선 “중학 교육과정 소홀, 주1시간에 문화재 보호까지 소화 무리”
박성윤 “문화유산 ‘종류’ 아닌 ‘보호 이해’ 관점 교육과정 편성 필요”
허권 “ NGO나 박물관, 미술관 학예연구사 등과 파트너십 구축을”
-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 문화유산 보호의 당위성이 주장되고 있지만 문화유산 보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논의는 미흡한 것 같습니다. 문화유산 보호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동원=“그렇습니다. 우리의 문화재 보호정책은 문화재의 현재적 보전가치, 희소성과 이를 활용한 경제적 효용성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희소성과 그에 따른 보존가치, 경제적 효용성 증대에 기여하지 못하는 문화재는 보호와 이해 대상에서 소외되고, 점차 잊히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문화유산은 나와 민족 정체성, 나아가 인간 이해에 가장 직접적이며 생생한 매개체이자,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민족・, 문화・경제적 가치체입니다. 문화재 보호정책 수립의 당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박성윤=“맞습니다. 숭례문에 아무리 천문학적 돈을 들여 복원한다고 해도 새로운 숭례문은 ‘조선의 숭례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숭례문’일 것입니다. 결코 조선의 숭례문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지요. 돈 들여 다시 지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문화재를 더 이상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박종선=“문화유산은 우리의 역사적 실존을 규정하고 미래를 헤쳐 나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우리의 현 상황이 어려울수록 문화유산의 가치는 더 빛나게 됩니다. 몽고의 침략이나 일제의 침탈 속에서 단군의 위상을 높이면서 자긍심을 지키고 불투명한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자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탐방을 할 때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유산이 남겨진 경위나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특히 문화유산은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역사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게 해줌으로써 역사의 산 증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춘희=“맞습니다. 각 지역 문화재는 조상들의 문화 창조의 소산으로 지역민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게 합니다. 초등학생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재를 접하면서 자신의 고장, 국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키우게 됩니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허권=“그동안 우리는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적 해석만 해왔습니다. 문화유산은 공기와 물과 같은 존재로 나와 동일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문화유산을 ‘살아있는 유산’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문화유산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초석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관광), 창조력의 기반이자 다양한 문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현 교과서에서의 문화유산 보호교육 내용과 비중이 궁금합니다. 또 현재 학교 교육이 우리의 역사문화를 이해하고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에 적절한 지 여부를 말씀해 주세요.
박성윤=“고교 1학년에서 배우는 ‘국사’는 주당 2시간입니다. 문화와 관련 있는 부분은 ‘Ⅵ 민족문화의 발달’인데, 시간 부족으로 소략하게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도 ‘우리의 문화유산은 어떤 것들이 있는 가’이지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멉니다. 지금부터라도 문화유산 보호 관점에서 역사 교육을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박종선=“중학교 교육과정은 매우 소홀합니다. 문화사가 고교 교육과정에 편성되면서 중학교에서는 거의 취급되지 않습니다. 7차 교과서에 문화유산 사진이 칼라로 실려 있지만 본문 속에는 관련 설명조차 없습니다. 6차와는 달리 7차에서는 왜 그 사진이 있으며, 본문 내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교과서 내용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교사의 설명이 없다면 학생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그마저도 주1시간의 수업에 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권선태=“초등 문화유산 보호 교육은 4학년 2학기 사회과에서 주로 다루어집니다. 18차시에 걸쳐 이루어지므로 적은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관련 내용이 4학년 2학기에만 다루어짐으로써 지속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학습동기를 일으킬 만한 문화유산 관련 자료나 프로그램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한춘희=“맞습니다. 교수・학습에 활용할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무엇보다 문화재의 우수성을 직접 느끼고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교수・학습 자료가 개발・보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교사 연수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효과적 교육은 교사 자신부터 직접 체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동원=“문화유산교육의 양적 확대는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내용은 초등 사회과만 보아도 양・질적으로 미흡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현재 초등 사회과에서 문화유산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실천을 통한 실제적 질 고양 문제라고 봅니다. 현장의 다양한 현실 문제(학습량 과다로 인한 탐구, 체험학습기회 부족 등)로 인해 문화유산 자체(객체)에 대한 수업을 넘어 ‘문화재를 통한 자기이해, 고장·지역이해, 정체성 확립’, ‘문화행하기’(감정이입, 오감을 활용한 체험학습, 실제적 탐구) 수업이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 문화유산 보호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권선태=“교과, 특별활동, 재량활동 시간과 연계해 주제 통합적으로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문화유산 보호 교육은 사회, 도덕, 미술 시간 등을 이용해 통합적으로 다루어지거나 재량활동의 범교과 시간, 특별활동을 통해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춘희=“학생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저렴한 비용으로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특히 공공시설 현장학습장소(박물관, 미술관 등)는 언제든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주5일 수업제의 확대에 따라 학교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박종선=“교과서 서술방식의 변화, 수업시수의 증가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완적 방법을 궁여지책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성윤=“문화사 부분에서 문화유산 보호 방법론과 사례를 풍부하게 다루어야 하며,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 보호 노력도 소개해 시야를 넓혀야 할 것입니다. 또 차제에 문화유산 보호 방법과 노력을 다룬 단원을 국사 교과서에 신설해 더 이상 선조와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동원=“문화유산교육을 나와 민족, 인류 이해를 위한 매개체로 의미를 확장시키고, 문화유산을 보존과 활용의 맥락에서 지속발전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한다면 문화유산보호 교육은 자연히 개선되리라 판단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계기교육으로써 ‘문화유산보호교육’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범교과 영역 중 하나인 ‘문화유산교육’의 양적 확대를 주장하거나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범하지만 문화유산(객체)의 깊은 이해와 이해 주체의 삶속에 다가오는 문화유산 수업, 수업 외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실천사례 보급, 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 프로그램 개발과 연수 실시가 대안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허권=“여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문화유산 보호 교육은 참 어렵습니다. 자료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고, 교사 연수도 미비합니다. 그렇기에 좀 더 창조적이고 참여적인 교육모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유산’으로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예술, 사회교과를 통합해 가르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체험학습을 할 때는 NGO나 박물관, 미술관 학예연구사 등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해 서로 협조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