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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졸업파티에 동성 파트너 출입금지

동성애 고교생들의 권리 주장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은 불법"

호주의 고등학교에는 졸업반(12학년)을 대상으로 학교마다 공식적으로 포멀(formal)파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쌍쌍 파티’가 열린다. 시기는 학교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2학기가 시작되면 포멀파티에 대한 기대로 교정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날만큼은 교복을 벗어던지고 가슴이 훤히 드러난 드레스와 짙은 화장, 화려한 장신구와 구두, 액세서리 등으로 한껏 멋을 낸 여학생들이 저마다 아름다움과 개성을 뽐내며 성인이 된 듯한 기분을 맘껏 누려보는 것이다. 남학생들도 말끔한 정장이나 턱시도를 뽑아 입고 파트너를 대동한 후 행사장에 속속 도착하는 모습이 제법 의젓해 보이는 날이기도 하다. 규격화된 교복과 규율 속에 갇혀있던 학생들은 성숙한 남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신사 숙녀의 매너를 갖추고 무르익어가는 밤을 만끽한다.

한편 한창 짓궂은 나이인 만큼 학교 행사마다 이른바 얄개나 악동들의 익살 또한 지나치지만 않다면 행사의 분위기를 더욱 살리는 양념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예전 추억을 더듬어본다면 파트너를 데려오지 못한 남학생들이 저희끼리 몸을 맞대고 블루스를 추거나 댄스홀을 누비며 파트너가 있는 친구들을 일부러 훼방 놓는 너스레 따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호주에서도 함께 참석할 여자 친구가 없어서 남학생들끼리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는 광경이 간혹 벌어진다. 그런데 그저 장난과 익살로 보아 넘기면 그만일 것 같지만, 실상은 자못 심각하다.

최근 퀸즐랜드 주의 한 명문 성공회 학교에서 오는 6월에 열리는 12학년 졸업반 파티를 앞두고 이성 파트너 대신 동성 파트너를 동반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학생들에게 학교 측에서 허락할 수 없다는 답변을 한 일이 있다. 어차피 치기어린 장난에 불과한 제안일 것을 가지고 학교 측이 지나치게 민감한 대응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동성 파트너 동반허용을 요구한 학생들은 게이, 즉 동성애자라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말하자면 장난삼아 같은 남학생들끼리 파티에 참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자 동성애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이었던 것인데, 이 사안에 대해 학교장은 “졸업반 학생들의 파티는 건전하고 공식적인 학교 행사로서 풋풋한 나이에 이성 간 만남을 허용하는 기회이기 때문에 단순한 사교라고만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교육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디까지나 학내의 정기적 행사임으로 전통적 관행을 변경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학교에서 주관하는 공식 무도회로서 이성에 대한 매너와 예절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만약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학교운영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학교운영위원장 겸 호주 성공회 수좌주교인 필립 아스피날 브리즈번 대주교는 이 문제에 대해 학교의 재량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퀸즐랜드 주 차별방지위원회는 동성 파트너 동반을 거부당한 학생들로부터 이번 사례가 제소될 가능성에 대비,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은 공립을 비롯하여 가톨릭계, 사립학교 등 모든 학교와 단체 공히 불법이라는 일반 원칙을 고수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호주는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크며, 그들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성년에 이르지 않은 학생들의 동성애 문제를 교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에는 관대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처사로 확인된 셈이다. 동성 파트너를 데리고 나타나는 일이 악동과 얄개들의 장난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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