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4층.
“나 하고 싶은 것이 생겼어. 디자이너.”
“그게 뭐더냐? 묵는 거냐?”
앳된 여고생 15명이 모여 있는 곳곳에서 걸쭉한 사투리가 쏟아진다. 2시간여의 연습 후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자마자 이들은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연극 속의 대사를 쏟아냈다.
연극 속 학교 장면의 동작을 맞추는 연습이 시작되자, 다른 친구들은 “우린 계단에서 대사 맞춰보고 오자”라며 자리를 옮겼다. ‘연습해라, 제대로 해라’라며 지도교사나 연출가가 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다. 오히려 학생들끼리 연출자들의 조언을 들으며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고쳐간다.
이들은 10~15일 남산예술센터 극장에서 연극 ‘나의 가장 빛나던 날’을 공연하게 된 서울 계성여고 연극반 ‘새별’의 여고 1~2년생이다.
지난해 ‘청소년 비전 Arts-TREE’사업에 선정됐던 15개교 중 우수 작품으로 뽑힌 ‘새별’ 학생들의 공동창착 연극이 일주일간 일반인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청소년이 주인공인 이번 연극에서는 예술감독인 배우 조재현과 연극배우 이지하씨도 청소년을 위해 제 2인자의 자리로 가게 된다.
서울문화재단과 서울교육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은 지휘자 김대진,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바리톤 김동규, 배우 조재현, 사물놀이 김덕수, 뮤지컬 배우 남경주 등 저명 예술가들이 학교로 직접 찾아가 8개월간 음악, 연극, 전통예술, 뮤지컬 분야의 청소년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1995년부터 ‘새별’을 지도해온 박동준 교사는 “제가 혼자 담당하다보니 기존의 틀대로만 계속하는 한계가 있었고 연극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 업그레이드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신청했었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연기력만 느는 것이 아니라 기획부터 대본, 연기까지 학생 공동 창작이라 교육적인 효과도 컸다”고 밝혔다.
계성여고 학생들이 선보일 이번 연극은 이제는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는 엄마의 이루지 못한 꿈이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꿈을 찾게 되는 딸의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엄마와의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해 가는 모습도 담아냈다.
70여 분간 진행되는 연극을 기획하고 대본을 짜는 것부터가 난생 처음인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이들은 우리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보자는 생각에 머리를 모아 꿈을 주제로, 항상 곁에 있는 엄마와의 갈등과 연결해 작품을 완성했다.
대본을 총괄 집핍한 고2 정예은 양은 “처음에는 대본을 직접 써야 하는 지도 몰랐고 경험이 없어 릴레이 이야기 만들기나 브레인스토밍 연습을 했고 친구들의 생각들이 모여 대본이 만들어졌다”며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웠지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꿈을 찾는 연극 속에서 참여 학생들도 자신만의 미래를 그려가게 됐다.
고1 안소빈 양은 “연극에 관심이 많아 이 학교를 지원했는데 이번 연극을 하면서 ‘과연 내 꿈이 뭘까?’라고 계속 고민하다 자동차공학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