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총은 지난 3월부터 5월1일까지 교실과 일상생활에서 교육자로서 겪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찾아 교육과 교육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스승 존중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선생님들의 작은 이야기'를 공모했다. 접수된 71편의 내용들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생님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가슴에 묻어두었던 내용을 살짝 들여다봤다.
#서울북공고 강대준교사
무릇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고 했다. 이것이 정한 이치라면 살아있는 자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이치도 우리 삶에 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1978학년도의 제자들에게 '8888 고지'라는 학급구호를 제창시켰었다. 이것은 70명 여학생들의 10년 후 반창회를 88년 8월8일 18시 남산팔각정에서 가진다는 집단 약속의 계시록이었다. 공교롭게 서울올림픽 때문에 88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 우리의 암호가 그 신비감을 좀 읽긴 했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후 나는 남산을 찾았다.
별로 큰 기대도 하지 않은 채 팔각정 고지에 올랐을 때 거기엔 32명의 숙녀들이 모여있지 않는가. 그로 인해 나는 그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교단 인생의 큰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사연은 일간지를 통해 보도됐고 이 기사를 읽은 당시 3학년 남학생들이 99년 9월9일 19시에 반창회를 열기로 결의하는데 까지 이어졌다.
#서울한서초 최경자교사
영석이가 전학 가던 날 영석엄마가 책상 위에 두고 간 감짱아치는 주홍빛 색깔만큼이나 두고두고 정겨웠다. 말썽꾸러기 선열이 할머님이 냄새 풀풀나는 오징어 열마리를 들고 오셨을 때 그건 바닷바람만큼이나 훈훈했다. 그리고 5년전 담임을 했던 다원이 엄마는 작년 스승의 날에도 취미 삼아 손수 만든 도지기 찻잔을 들고 어김없이 찾아왔었다. 나는 이것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게 이따금씩 주어지는 기쁨이요 보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누가 이것을 뇌물이라 할 것인가. 누가 이것을 잘못되어 가는 교육현장의 비리라고 할 것인가.
작년 스승의 날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선물은 물론 꽃 한송이도 받지 않겠다는 학부모 가정통신문을 보냈었다. 그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한 아이가 만들어 온 종이꽃조차 돌려보내야 했다. 스승의 날이 오히려 교사들을 슬프게 만든 날이었다. 스승의 날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 지경이지만 우리가 모두 이성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면 우리 모두 국가에 대역죄를 짓게 될 것이다. 우리의 힘은 오로지 양심을 지켜 사랑하는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일이 다.
#경기평택 지산초등교 안승보교사
준철아. 지금 선생님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대지를 감싸주는 포근한 날씨가 얼어붙었던 겨울을 살포시 녹여주고 있는 계절이 오고 있단다. 하체부터 전신이 마비가 되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가슴이 메어지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단다. 휠체어에 앉아서 공부하면서도 발표도 열심히 하고 동화책 읽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너였어. 공부시간에 소변을 보고 싶으면 선생님하고 부르기로 약속한 너였지.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 가 들려오면 얼른 너에게 달려가서 휠체어를 옆으로 돌려놓고 통에 볼일을 볼 때 겸연쩍어 하던 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6학년때 너와 함께 한반에 배정됐고 1학기까지는 너의 활달한 모습에서 학급분위기는 더한층 즐거웠지.
그런데 2학기 들어 학교를 시름시름 빠지더니 10월부터는 학교를 못나오게 됐고 사흘이 멀다 않고 너의 집을 찾았지. 네가 졸업을 하고 어머님께 전화로 안부를 물었을 때 하늘나라로 갔다는 어머님의 울먹이는 말씀에서 말문이 막혀 위로의 말씀도 드리지 못했단다. 세상에 태어나서 마음껏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먼저 간 너. 오늘도 선생님은 너를 생각하며 다 시는 이런 일들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단다.
#서울선희학교 김영국교사
청각장애로 인해 들을 수도 없고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학생들과 함께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28년이 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내손을 거쳐갔다. 매년 느끼는 감정이지만 평안남도가 고향인 우리집의 명절은 쓸쓸하다. 설날 아침 우리 가족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다. 전화를 건 사람은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 특수학교 제자였다.
새해 문안 전화였다. 지난 28년 동안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각장애인 제자에게 새해문안 인사전화를 받아본 것은 금년이 처음이다. 나는 몹시 기뻤다. 그리고 흥분된 상태에서 제자와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청각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말을 하고 또 상대방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가. 궁금해하겠지만 제자는 선천적 청각장애가 아닌 후천적으로 4세때 고열로 인해 소리를 못듣게 됐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개념과 어휘력이 있으며 청력 손실상 태가 양호해 보청기를 통해 여러 가지 소리와 음성언어의 변별을 할 수 있고 구화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언어표현을 할 수 있는 학생이었다. 전화내용은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것이었지만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 더 귀하게 느껴진 값진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