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ICL)의 올 1학기 시행이 무산되면서 당장 돈을 빌려 등록을 해야 하는 대학 재학생과 신입생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새 제도가 법을 제정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국회의 입법 절차를 무시하고 당연히 시행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홍보해온 정부나, 대출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 등을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1학기에는 통과시켜 주겠다고 공언한 정치권 모두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6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1학기에는 종전 정부 보증 학자금제를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학자금 대출 자체가 물 건너 가는 게 아니어서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제도의 차이로 현재 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정병선 학생학부모지원과장은 6일 "1학기부터 시행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으나 국회의 관련 법 처리 지연으로 어렵게 됐다"며 "일단 올 1학기는 기존대로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제를 계속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해 12월31일 기자회견을 열어 ICL법을 이달 27~28일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하고 2월1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지만 물리적으로 1학기 시행은 불가능하다는 게 교과부 설명이다.
관련 법이 2월1일 본회의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대출 시작을 알리는 홍보부터 대출 신청자를 대상으로 자격이 되는지(소득 7분위 이하)를 확인하기까지 17일가량 걸리는 등 최소 25일에서 한 달 정도 소요되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 등록 기간이 보통 2월 초까지여서 아무리 빨리 대출 절차를 진행한다 해도 기간 내에 끝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따라서 1학기에는 기존 방식대로 대출하고 그 사이 관련 법을 정비해 2학기부터 ICL제도를 적용할 계획이다.
종전 제도로 대출한 뒤 나중에 ICL로 전환해 주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오히려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정 과장은 "혹시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을 것에 대비해 작년 말 한국장학재단의 자본금 1천억원을 예비비로 확보하는 등 현재 3억5천억원의 자금이 마련돼 있다"며 "이 정도면 올 1학기 최대 3조5천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학기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 금액은 1조3천100억원, 2학기 1조2천500억원이었다.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 업무를 맡은 한국장학재단은 조만간 금리와 절차 등에 대한 세부 내용을 확정해 학생들에게 고지하고 대출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학자금을 빌리기로 작정하고 준비해 온 학생들은 장학재단의 안내에 따라 예전 방식대로 대출받으면 된다.
ICL제도나 이전 제도는 대출 금리, 금액 등은 비슷한데, 다만 원리금 납부 시점이 취업 후 상환 학자금제는 취업 후 일정 소득이 생기면, 기존 제도는 소득과 관계없이 상환기간이 도래하면 해야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하지만 현재 2만명 가량으로 예상되는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대출을 받을 수 없어 ICL제도가 1학기부터 시행된다는 정부 발표를 믿고 기다려 온 채무 불이행자들은 결국 피해를 보는 셈이 됐다.
ICL제는 기존 대출제와는 달리 금융채무 불이행자에게도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학가에서는 유사 제도를 시행하다가 ICL제가 도입되면서 이를 폐지했던 일부 대학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과, 이번 기회에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지금도 저소득 학생을 위한 장학금이 거의 전원에게 충분히 지원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중앙대의 경우 릴레이장학금이라는 유사한 제도를 통해 900여명에게 연간 25억원을 지원해 왔는데 ICL제 실시를 앞두고 이 제도를 없앰에 따라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자가 6%의 고율이라 갚아야 할 돈이 빌린 돈보다 세 배가 불어날 수도 있는 제도인데, 이번 기회에 이런 부분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