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 (수)

  • 흐림동두천 -2.8℃
  • 구름많음강릉 2.4℃
  • 서울 -1.0℃
  • 구름많음대전 4.1℃
  • 대구 5.4℃
  • 구름많음울산 5.4℃
  • 광주 3.7℃
  • 흐림부산 7.1℃
  • 흐림고창 4.2℃
  • 제주 9.4℃
  • 구름많음강화 -2.7℃
  • 구름많음보은 0.8℃
  • 흐림금산 3.4℃
  • 흐림강진군 4.2℃
  • 구름많음경주시 5.2℃
  • 흐림거제 7.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현장

<시네마 편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을 위해 '한'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진부하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실감하게 됩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웃을 수
있다는 말을, 슬픔을 통과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정말 있다는 사실을…

요즘 '연륜'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 오히려 한 영역에서 죽치고 있는 사람을 비웃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하지요. 그뿐입니까. 이
세상 모든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도 줄어들었습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나이 들었다고 다 어른이냐'는 말이니까요.
여기 쿠바의 가수가 있습니다. 80이 넘어, 쪼글쪼글 늙은 그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수많은 쿠바인들의 환호 속에 노래를 했던 이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 '노래가 더 이상 내게 줄 것이 있을까'라는 회의를 맛보았습니다. 마이크 잡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가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에게 "나는 이제 노래하지 않아"라고 말할 때의 심정을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감독 빔 벤더슨)은 음악 영화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 3세계의, 버려진 쿠바 음악에 관한 영화입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디지털 영화입니다. 비주류의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는 영화인 셈이지요. 그런데도 이 영화는 주류의 감성에 포근히 겹쳐집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꿈을 잃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의 석세스 스토리이자 숨겨진 것을 발굴해내는 보물찾기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겠지요.
누군가의 성공담은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물론 영화 속 그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9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로맨틱한 감성을 잃지 않은 꼼바이 세군도(1907년 생), 라이 쿠더가 "내 평생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격찬했던 루벤
곤살레스(1919년 생), 한때 '쿠바의 냇 킹 콜'로 이름을 날렸지만 오랫동안 구두닦이로 살아온 이브라힘 페러(1927년 생), 유일한 여성
보컬인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 생)....
이들이 한 데 모이게 된 데는 우연의 마술이 작용했습니다. 그들의 음악에 매료된 라이 쿠더에 의해 20년 동안 잊혀졌던 그들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완전히 잊혀진 줄만 알았던 그들은 그렇게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글쎄.. 글쎄.. 글쎄.)”라고 중얼거리며 언제가 올 그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나라, 쿠바. 라이 쿠더와
빔 벤더스에 의해 '발견된' 그들은 쿠바의 도시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우리에겐 꿈이 있다'는 낙서처럼 아직 꿈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힘이 결국 죽음을 앞둔 나이에 그들을 카네기 홀에 서게 한 것이겠지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를 '화양연화'라고 한다지요. 그들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요. 카네기홀 공연? 아닐 겁니다. 세월 때문에, 생활
때문에 접었던 음악을 다시 찾은 그 시기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멤버들에겐 가장 아름다운 한 때였을 겁니다. 삶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을 때,
어쩌면 그 때야말로 무엇인가를 찾아낼 가능성이 가장 많은 시기가 아닐까요.
예술을 위해 '한'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진부하다고 하겠지요. '신의 선물'처럼 주어져 홍수처럼 분출되는 것이 재능이라고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실감하게 됩니다. 진정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웃을 수 있다는 말을, 슬픔을 통과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정말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이 영화를 통해 조용히 귀 기울여 보세요. 꿈도 희망도 없이 노래하다가
말년에 갑작스럽게 마주친 행운에 그들이 얼마나 겸손한지를.... 지난 2월 그들의 서울공연을 놓친 것이 아직도 아쉽습니다. 다시는 직접 그들의
음악을 만나지 못하겠지요...
/서혜정 hjkara@kfta.or.kr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