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본회의 처리에 합의한 학교체육법안이 여당 의원의 반발로 부결되는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정작 국회 통과가 시급한 민생법안이 무더기로 처리되지 못한 것이다.
이날 본회의는 오전까지만 해도 기초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을 내용으로 한 공직선거법 수정안을 대표 발의자인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이 철회하지 않아 불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유 의원이 오후 2시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수정안 발의를 취소키로 하면서 가까스로 본회의가 열릴 수 있었다.
복병은 학생인 운동선수가 일정 학력수준에 미달할 경우 대회 출전을 제한토록 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학교체육법안이었다. 중앙대 체육과 교수 출신인 안 의원의 제안 설명이 끝난 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서면서 일이 꼬인 것.
명지대 교수 출신인 박 의원은 "절차상 심각한 하자와 법안 내용의 문제, 실효성 미비 등으로 통과돼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된 이 법안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민주당 측은 이에 반발, 처리할 법안이 39개나 남았는데도 4시 40분께 퇴장해 버렸고, 민주당의 퇴장으로 의결 정족수에 미달하자 본회의 사회를 맡은 문희상 국회부의장은 '20분간 정회'를 선언했다.
여야는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비방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신성범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브리핑에서 "의원 자유투표에 의해 부결된 것을 두고 합의위반이라고 하고 퇴장한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고, 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야간 의사일정 및 의안 상정과 관련한 신뢰를 깨는 행위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한나라당은 오후 8시께 친박연대 등과 함께 민주당을 배제한 채 본회의를 속개하기로 했으나 8시 40분까지 의원이 90여명 밖에 나타나지 않자 결국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본회의는 자동 유회됐다.
책임 소재를 떠나 절대 과반 의석을 지닌 한나라당으로서는 결과적으로 '집안 단속'을 못한 꼴이 됐다. 18대 국회 들어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에 따라 법안이 상정되고도 본회의에서 여당내 반대로 법안이 부결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금산분리를 위한 금융지주회사법이 여야간 막후 절충으로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한나라당 소속의 김영선 정무위원장이 "상임위 심사를 무시했다"며 반대토론을 한 뒤 부결됐다.
이에 앞선 2월 국회에서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개원을 앞두고 정부가 제출한 변호사 시험법안에 대해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반대토론을 벌이자 법안 통과가 좌초돼 여당내 이견조율 미비를 그대로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