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공직자 재산등록이 최근 교육계 비리근절이라는 여론에 편승해 학교장들의 재산등록 의무화까지 뻗치고 있다.
지난 14일, 국민권익위원회가 국공립 초중고교 교장을 공직자윤리법상 재산등록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도입하도록 교과부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왜 이 지경까지 왔나’라는 탄식부터 시작해서 상실감, 좌절감, 회의감이 앞선다.
현재 재산등록 대상자만도 행정부 10만 6000여명을 비롯 입법부 1300여명, 대법원 3700여명, 헌법재판소 70여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30여명, 지방자치단체 5만 5000여명, 16개 시도교육청 2300여명 등으로 적지 않다. 제도 도입 이후 고위공직자들의 재산변동, 특히 증식내용은 공직사회뿐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였고, 상당부분 공직자의 청렴성과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일부 평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교육계의 크고 작은 비리가 잇따르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장이라고 재산신고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법 하다.
그러나 9400여명에 달하는 전국 초중고교장의 재산등록 의무화는 소수의 비리근절을 막기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또 교육자를 비리집단으로 오인케 함으로써 평생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교단을 지켜온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될 우려가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교직사회만 있는 것이 아닌듯하다. 지난해 9월 현직 경찰관이 하위직 경찰공무원인 ‘경사’부터 재산등록 의무로 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권을 침해한다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주된 이유가 가족전체의 재산을 등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고 치안업무에 오히려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산공개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 벌써부터 현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교과부는 비리근절이라는 여론에 밀려 학교현장의 의견을 단순히 ‘자기 이익 챙기기’, ‘변화에 대한 거부’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자존심과 사기를 높여 학교 교육력을 높이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