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교육비리 척결 방침에 따라 전국에서 진행 중인 검·경의 수사가 ‘캐내기식’으로 진행되면서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교원의 주민번호, 전화번호 등 개인 정보나 해외여행 현황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지난 달 30일 충북교육청은 청주시내 인문계고 24곳에 2007~2009년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교원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해외여행 당시 본인의 직·담임학년 및 반·성명·출국국가·여행 기간·현 소속을 명시토록 했다.
공문은 청주 흥덕경찰서가 교육청에 요구한 것. 경찰은 “일부 교사들이 기숙사 선정 및 우월반 편성과 관련, 학부모들에게 향응성 해외여행을 제공받고 있다”는 제보에 따라 교육청에 요구했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는 방학기간 동안 자기 계발 및 휴가 차원에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교사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지만, 교육계 비리가 확산되면서 경찰의 요청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울산에서는 경찰서가 학교를 대상으로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내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 달 31일 울산중부경찰서는 울산 초등교 118곳에 ‘2002년 5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각 학교에 재직했던 교장, 교감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 연도별 교장·교감의 성명과 재임 기간은 물론, 주민번호 및 연락처까지 기재토록 했다.
울산의 한 전직 교장이 학교에 기간제 및 시간강사를 소개해주고 돈을 받았다 검거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공문이 전달되자 울산교총은 5일 경찰서를 방문해 ▲관할교육청을 통해 자료를 받을 수 있음에도 단위학교에 직접 자료 제출 ▲퇴직교원에 대한 자료, 주민번호 등 개인 정보를 요구한 것 등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차명석 울산교총 회장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고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처럼 무차별적 수사에 대해 교육자들이 심한 자괴감에 빠져있다”며 “특히 퇴직교원에 대한 자료는 학교에 남아있지도 않은 무리한 요구다”고 주장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앞으로는 자료 제출 요청 등 수사과정에서 더욱 신중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여론몰이식 수사가 계속되자 학교현장에서는 “경찰이 ‘실적 쌓기’를 위해 여론몰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충주 모 교사는 “범죄가 있으면 밝혀내는 게 경찰의 임무지, 모든 학교를 감사하듯이 조사하는 것이 경찰이 할 일이냐”며 “이런 식으로 하려면 경찰관들의 해외여행도 조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 모 교장은 “경찰의 경쟁 수사로 학교현장이 혼란에 빠졌다”며 “학교와 교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반문키도 했다.
한국교총 하석진 교권국장은 “사정당국의 저인망식 캐내기 수사는 교육계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으로 교원 사기 저하로 이어져 결국 교육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하지만, 학교현장을 혼란에 빠트리는 수사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총은 마구잡이식 캐내기 수사에 대해 제보를 받아 앞으로 신중한 수사 촉구를 위한 활동자료로 활용할 계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