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설악산 식물도감' 洪文杓교사(강원 고성 대진중·48). 강릉 토박이인 그가 설악의 골속 골속을 찾아 식물생태를 연구한 지도 벌써 16년째다. 그가 고독한 산행을 시작한 것은 84년. 설악산 자연학습에서 야생꽃 이름을 물어오는 학생들의 질문이 계기가 됐다. "한해에 수백만이 다녀가는 명산이지만 어떤 식물이 서식하고 사라져 가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홍교사는 그때부터 설악의 숨겨진 얼굴을 찾아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십 수년 동안 그는 설악산과의 '외도'에 주말과 방학도 잊고 살았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결코 놓칠 수 없다는 마음에 카메라 가방이 무거운 줄도 모른다. 植生이 훼손되지 않은 곳을 찾다보니 자연 등산로도 없는 가파른 골짜기나 능선, 절벽 끝이 작업실이 됐다. 그래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96년 강릉 간첩침투사건이 벌어졌을때도 녹지자연도 조사를 위해 설악산 산행을 했을 정도다. 식물이 성장하거나 꽃피는 시기를 한 번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다 어쩌면 내년에는 그 식물이 영영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못해도 몇 백 번은 설악산을 올랐다는 그는 이제 설악산 식생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의 권위자다. 96년 그는 '유네스코 자연포럼'에서 '설악산의 희귀 및 미기록 식물'을 발표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일으켰다. 그간 보고되지 않은 미색노랑제비꽃, 흰칼잎용담, 흰꽃향유 등 3종25속54종의 서식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또 97년 홍월귤의 서식지를 최초로 촬영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환경부 요청으로 설악산 식생조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교사는 지금까지 1천2백50여종의 설악산 야생식물 중 약 7백여종을 7천장의 슬라이드 필름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지리산 식물사진집이 2백여종을 수록한 것을 감안하면 방대한 자료다. 그러나 그는 아직 조사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 1백여종은 될 것이라며 촬영을 마치는대로 설악산 식물도감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중학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1백여종의 식물을 조감하는 사진자료집과 '고성군의 해안식물'이라는 교사용 자료집도 작업이 마무리되는대로 보급할 예정이다. 지난해 건국대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식물학을 전공해 설악산 등 지역의 식생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해 나갈 계획도 갖고 있다. "식물군의 변이 등 정확한 식생을 파악하는 것이 생태계 보존의 첫걸음"이라는 홍교사. 그는 "살아 있는 설악산을 고스란히 후손에 알리고 물려주는 노력도 수업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趙成哲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