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기조로 ‘공정한 사회’와 ‘친서민’을 내걸었다. 그렇다면 2014 수능과 내신 개편안 등 최근 MB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대학입시 관련 정책들은 과연 이 기조에 적합한 것일까. 안양옥 회장은 “단편‧지엽‧임시방편적 처방전과 같은 정책으로 인해 대입제도가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며 “교육계를 중심으로 사회 각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종합‧체계적 안을 만들어 나가자는 의미에서 이 좌담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좌담에는 강선보 고려대 사대학장, 박효종 서울대 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 등 본지 신임논설위원이 참여했다
입학사정관제 “시행착오 수정, 점진적 안착의 의지 필요”
2014 수능개편안 “학습 부담 완화가 입시제도의 목표라니…”
내신 절대평가 전환 “평가방식보다 선결 과제는 제도의 안정성”
공정성 확보 방안 “기준제시, 다단계 과정설정, 결과 공개해야”
안양옥=입학사정관제도 논란이 뜨겁습니다. 감사원이 지난 9월말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추진 중인 입학사정관제가 취지와 달리 외고 등 특목고를 우대했다고 밝힌데 이어 국정감사에서도 사정관의 자질, 양적 팽창 등 교과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는데요. 교과부는 속도조절을 하겠다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아 보입니다. 현장에 계신 최진규 선생님의 의견 부탁드립니다.
최진규=학생을 선발할 때 학업성취 수준 외에 자질이나 재능을 참고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합니다. 굳이 입학사정관제가 아니더라도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교과 못지않게 진로‧인성교육과 다양한 적성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입학사정관제는 학력경쟁에만 매진하고 있는 교육 현장을 변화시켜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다만 ‘급히 먹는 음식이 체한다’는 속담처럼 너무 속도가 빠릅니다. 학교 현장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한 후, 서서히 선발 인원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또 선발 과정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와 방법 마련도 시급하다고 봅니다.
박효종=맞습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항상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입학사정관제도가 전혀 새로운 입시제도인 것처럼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눈에 비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려되는 바는 우선 사정관의 자질입니다. 수험생들의 인격,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과연 지금 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정관들이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또한 많은 입학사정관들은 비정규직으로 자신의 임무와 직책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성만 강조한다고 좋은 결실을 거둬낼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 확대로 인해 새로운 유형의 컨설팅 사업만 부추기는 등 학생과 부모의 부담은 가중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수정해 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안착시키겠다는 의지가 정말 필요할 것입니다.
강선보=입학사정관제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불신(不信)입니다. 입시 문제는 매우 예민한 사안임에도 사회적 합의가 지금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각 대학별로 대입자율화의 과정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각 대학별 입시에 적합한 것인지 등을 냉정하게 판단해 정책 결정을 내린 후, 내실 있게 시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교과부나 대교협에서도 밀어붙여서는 곤란합니다. 입학사정관제를 운용할만한 대학은 그렇게 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비판하는 측도 무조건 표피적 비판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입학사정관제도는 대학별로 특성을 살려 시행되는 제도이므로, 모든 대학이 동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정관제도가 어느 정도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는 대학의 경우, 그 긍정적 측면을 입시준비생과 학교, 학부모, 혹은 다른 대학에 잘 알려 상호 소통하고 믿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남기=입학사정관제 내실화 유도를 위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정규직 입학사정관 채용, 대학 자체 예산확대, 학생선발 역량(전문 인력과 예산)을 감안한 입학사정관제 전형 조정, 입학사정관의 평가 역량 강화 등이 필요합니다. 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발한 학생들의 지역‧출신학교‧사회경제적 배경 다양화 등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책 지표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대학은 대학이 원하는 특정 집단의 학생들을 선발하는데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구체적 평가지표로는 선발 결과 실제로 얼마나 다양한 집단의 학생이 선발되고 있는지, 다양성은 매년 어떻게 개선되고 있는지, 대학은 다양성 확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 대학 정보공시에도 입학사정관제 전형 선발 학생들의 배경‧특성별 통계 발표를 포함시키는 보완 조치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제도를 악용하는 대학이 있다면 국가와 사회가 제제를 가할 필요도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 실시도 사정관제 정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사후관리 프로그램 운영도 유도해야 합니다. 특히 잠재력을 보고 실제 학력은 뒤지는 학생을 합격시켰을 경우 학력보완‧멘토‧특별지도교수 배정 등의 후속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으면 1년 이내 탈락 등의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과 함께 입학사정관제로 순서가 바뀌어 합격한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평가해 선발의 타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안양옥=대안까지 박 총장님께서 잘 짚어주셨습니다. 올 수능도 보름 안팎 남았습니다만, 수능 개편안과 내신 절대평가 전환 논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먼저 중장기 대입선진화연구회가 발표한 ‘2014년도 수능개선안’은 ▲수준별로 나눠 A/B형을 제공 ▲사회·과학 탐구영역을 통폐합해 한 과목만 응시 ▲수능 2회 시행 ▲입학사정관제 정착·확대 등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교총은 이번 개편안이 학습부담 완화, 사교육 경감, 고교교육 정상화 그 어느 것에도 미흡한 안이라는 입장입니다. 개편안에 대한 의견과 보완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최진규=2014 수능 개편안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시험의 난이도를 기초와 심화로 나눈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쉬운 수능’을 반영할 대학은 그리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탐구 과목을 줄이고 소위 국영수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학교를 도구과목 중심의 입시지옥으로 내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보름 간격으로 치르는 시험은 사교육 족집게 강의를 등장케 할 개연성도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도 문제입니다. 지금도 수능 응시료가 평균 4만2000원(4영역 응시)인데 두 번 치르면 배 이상의 비용이 듭니다. 또한 시험장 관리와 감독관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박효종=사탐‧과탐 영역을 통폐합해 한 과목만 응시하게 한다는 것은 공교육을 더욱 더 황폐하게 만들고 국영수 중심으로 편중된 교육과정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먼저 짚고 싶습니다. 또 수능을 2회 시행한다고 해서 부담이 경감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최 선생님 지적대로 모든 학생들이 2회를 다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쉬운 수능과 어려운 수능으로 나누어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 패자부활전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 제도란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추어 구상․운영 되어야지, 전문가집단이 일방적으로 판단해 결정을 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선보=이번 개편안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과목수를 줄인다거나, 시험 횟수를 늘려 시행하고 그 중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응시하게 한다거나, 시험을 수준별로 시행한다는 등의 사고는 매우 기계적이고 정량적 시각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습 부담을 줄여주는 것처럼 인식될지 몰라도, 실제로는 학생들에게 시험 보는 요령과 눈치, 편법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오직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교과목만을 골라 시험을 볼 수 있게 조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교육의 본질과 교육의 진정한 의미 자체에 무게중심을 맞추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박남기=수능개편안은 수능이 대학진학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따라 평가가 나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의미가 지금보다 작아진다면 개편안이든, 어떤 다른 안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수능의 비중이 더 커진다면 이번 개편안은 개악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먼저 수준별 A/B형의 경우는 향후 대학 진학 자체는 학생 수 감소로 문제되지 않을 것입니다. 관심사는 소위 인기대학‧학과에 입학하는 것인데 이러한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려면 낮은 등급의 B형 시험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가려면 A형 시험에 응시해야 하므로 구분 자체는 시험만 번거롭게 할 뿐 실효성은 없을 것입니다. 학습 부담 완화가 입시제도의 목표인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전공을 하든지 사회와 과학 영역에 대한 이해는 기본입니다. 특히 통섭이 강조되는 시대에 학습부담 완화를 위해 어느 한 과목만 응시하게 할 경우 학생들은 대학 시절에 교양을 쌓기 위해 더욱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수능 2회 시행은 이미 시도했다가 실패한 제도입니다. 과거 실패한 이유와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해 도입 여부를 다시 한 번 고민해주기 바랍니다. 미국의 SAT는 우리나라에서 시험문제 사전 유출 사건이 터질 만큼 허술하고 대학 진학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다릅니다.
안양옥=내신 절대평가 전환도 2014년으로 예고되어 있습니다. 학생부에서 등급 표시를 없애고 원점수, 평균점수, 표준편차, 과목별 이수 학생 수만 공개하는 절대평가 체제로 가겠다는 것이 교과부 안입니다. 앞서 살펴본 논란이 혼재하는 가운데 평가방식 전환이 과연 얼마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의견 부탁드립니다.
박남기=절대평가를 실시하다가 상대평가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신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 어쩔 수 없이 상대평가의 특성을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입과 무관하고 비중이 낮다면 절대평가가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강선보=이 문제도 입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평가방식의 전환, 이것 하나를 가지고 교육문제를 풀려는 사고가 문제입니다. 평가방식의 전환도 중요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려는지, 먼 미래를 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효종=내신 성적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꾼다고 해서 공정성에 관한 부분이나 투명성에 관한 부분이 더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경쟁을 완화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절대평가는 오히려 학생과 학부모 및 대학 당국에 평가에 대한 불확실성을 강요할 우려도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내신 평가 방식의 전환보다 선결되어야 할 중차대한 교육과제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어떤 제도든 안정성을 지녀야 신뢰를 받게 마련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내신평가제도도 변화보다는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선결과제임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최진규=내신평가 문제는 절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평가는 개인적 특성이나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획일적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습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 과열 경쟁이 빚어지면서 친구의 노트를 훔치거나 찢어버리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점수 부풀리기’의 가능성이 여전한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두 방식이 갖고 있는 장점을 찾아 부작용 최소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이 고교 내신을 점수 순으로 줄 세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고 학업 성취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안양옥=수시모집이 전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넘어섰습니다. 그만큼 논술, 사정관 같은 선발 시스템에 있어 주관적 평가체제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외교부장관 딸 채용 과정에서 보듯 심판관들의 공정성 심판이라는 과제가 우리 앞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제도의 정교한 설계를 위해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시는 지요.
최진규=현재 수도권의 중상위권 대학들은 수시모집에서 논술 전형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논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지요. 논술고사가 서술형이라는 점에서 객관성 문제는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논술고사는 채점 과정에서 최고점과 최저점을 뺀 나머지 점수의 평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문계는 영어 제시문을 사용해 어학 능력을 검증하고 자연계는 일정한 답안을 유도하는 등 나름대로 객관성 유지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입학사정관제도 논술고사처럼 평가의 객관성 담보를 위해 평가 기준을 정확히 제시하고 평가 과정을 다단계로 설정한 후, 그 결과를 공개한다면 신뢰성 회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선보=평가자 내부에서의 불공정 문제는 최 선생님 의견대로 진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정관이나 평가자들이 함께 모여 수십 차례에 걸쳐 평가 기준과 요소 등을 조율하고, 평가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워크숍을 개최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각 대학별로 평가자의 평가기준에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는 내부 장치를 마련해, 대학별로 우수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연구와 교육, 전문성 향상 훈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와 함께 교과부나 대교협 등에서 지속적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효종=아무리 좋은 제도도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 자체 못지않게 제도를 운영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자질이 중요합니다. 특채라는 제도도 원래의 취지는 능력 있는 사람을 일반적 절차를 생략해 뽑겠다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운영과정에서 연고를 가진 사람을 뽑는 저급한 제도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제도 못지않게 의식과 자질 향상의 중요성을 지적할 필요도 있습니다. 어떤 제도든 불공정성 최소화를 위해서는 복잡성 보다는 단순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박남기=동감입니다. 카라벨(Karabel, 2006)이 <선택받은 자>(The chosen)라는 책에서 “신입생 선발 결정은 교육자가 하지만 아주 정치적인 특성을 띤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선발 정책은 각 집단은 선발 기준과 실제적인 선발 과정을 통해 내려진 결정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를 바라는 경쟁적 집단 간의 협상 결과이다.”라고 한 이야기를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의 변천사를 보면 집단 간 협상 결과가 아니라 힘 있는 집단이 자기 자녀에게 유리한 선발 기준과 절차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전쟁 상황일 때에는 비록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객관식평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중국이 심지어 예술분야 대학원 시험까지 객관식 시험에 의존하는 이유는 주관식 평가의 공정성 확보가 어려운 사회적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뇌 및 평가 기법에 대한 연구 등을 토대로 객관식 평가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안양옥=마지막으로 입시제도 전반에 대한 교총의 역할에 대해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최진규=현재 입시제도 관련 세부 사항은 대교협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입자율화에 따라 학생 선발권이 대학에 넘어간 것이지요. 문제는 대교협이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경쟁력 강화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대 교원 단체인 교총이 대교협과 정기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기구(가칭 고교-대학 간 대입 협의체)를 구성, 대학과 고교 간의 조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효종=이 시점에서 교총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교과부도 진보 교육감들도 밀어붙이기식 개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총은 이 틈바구니 속에서 교육의 정도를 교육계와 사회에 주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교육이 정치논리나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제자리를 찾게끔 노력을 하는 것이 지금 교총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또한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신뢰와 신망을 얻는 일이 급선무라고 하겠습니다.
강선보=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이른 바 ‘진보-보수’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불신의 골은 너무 깊어 의사소통이 불가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때로는 정치적 색깔이 분명하게, 교육적 입장이 분명하게, 진보-보수 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사회발전의 초석이기에, 일방적 반대나 찬성보다는, 정책 자체의 본질을 중심에 두고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정신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교총은 역사와 전통에 기초해 보다 신중하고 깊이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교육의 발전을 위해 기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남기=저 역시 교총이 2014년 수능 개편안 마련 등 근시적 대안보다는 초등1학년에 들어갈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 대비해 향후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이들이 공부한 것을 어떻게 평가해 대학의 당락을 결정할 것인가, 그리고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도 희망을 갖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해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보완적 기준과 절차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해 장기적 안목의 논의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교총이 주도하고 사회 각계의 관련 전문가와 관심 있는 언론사를 참여시켜 3년 이상의 목표로 국민대토론회를 이끈다면 그 과정을 통해 국민들은 스스로를 교육시키면서 공감대를 키워가게 될 것이고, 그러한 공감대 위에 바람직한 입시제도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양옥=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사회적 자본, 즉 신뢰가 부족한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고 했었지요. 여러 질문을 드렸지만 결국은 신뢰가 바탕이 된 입시제도를 만드는 데 교총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