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방형 자율학교’ 1호로 2007년 문을 연 중랑구 원묵고등학교. 원묵고의 첫인상은 커다란 교실 창문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자유와 열림’이었다. 벽의 절반 정도 크기로 만들어진 넓은 창문 너머로 원묵고의 특별한 교육과정을 엿봤다.
# 인성함양 프로젝트
1, 2학년 체험 중심 차별화된 전일제 봉사
원묵고 학생들은 지난달 21일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한 ‘농도원’으로 체험활동을 다녀왔다.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구내 조손가정 및 한부모 가정 등 아동 33명과 원묵고 학생 40여명이 ‘어우러짐’ 체험활동을 한 것이다. 목장견학, 송아지에게 건초주기, 젖 짜기, 아이스크림과 치즈 만들기 등 자원봉사자 교육 위주로 진행된 체험을 통해 결손가정 아동들은 “알프스 소녀가 된 것처럼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지난 7월부터는 이 아이들과 ‘하하! 호호! 즐거운 요리교실’도 진행하고 있다. 1:1 결연을 통한 형제·자매 멘토를 형성하고 매월 둘째 월요일 원묵고 가사실습실에서 정기적으로 만난다. 아이들은 서로 마음이 맞는 언니, 오빠들과 휴대폰 번호도 교환하고 고민도 이야기하는 등 남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듯 인성교육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원묵고의 첫 프로젝트는 봉사활동이다.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진건농협과 ‘1교1촌 자매결연’을 맺는 등 1학년의 경우 학급별 농촌체험 봉사활동을, 2학년은 중랑노인전문요양원에서 노인공경 봉사활동을 한다. 이와 유사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학교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활동 시간이 아닌 평일 정규 수업 시간에, 하루 종일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은 자율형 공립학교이기에 가능했다.
송지연 교사는 “인성을 기르는 데 봉사만 한 게 없다는 것이 교사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면서 “형식적인 봉사와는 차별화된 시스템 속에서 봉사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변하고 공동체의식이 향상되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다나(1학년) 학생은 “요리교실에 초대받은 어린 동생 한 명이 샌드위치를 엄마 생신이라며 소중히 싸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溫故知新 전통지킴이- 예절교실, 가야금 필수
원묵고에서는 학생들의 기본적 인성교육을 위해 예절교실이 운영된다. 학생들은 평소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마음가짐, 몸가짐, 인사하기 등의 교육을 통해 예의를 배운다. 이러한 교육 때문인지 원묵고 학생들은 인사성은 물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민경주 교사는 “예절교육은 1학년 남녀 모든 학생에게 연중 4시간 가정시간을 활용해 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진다”며 “전문 강사를 모셔 바른 자세 및 공수인사법, 우리나라 절하기와 다례교육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 교사는 “예절교육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자기절제 등을 배워서 인지 학생들의 정서가 많이 순화된 것 같다”며 “우리 아이들은 정말 착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교 이래 학생들은 정규 음악시간에 북이나 가야금, 장구를, 방과후학교에서는 판소리 풍물 등을 배우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특히 1학년 학생들은 일주일에 1시간씩 재량시간에 가야금 수업을 받고 있어 아리랑과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중에서 자진모리를 기본으로 연주할 수 있다.
김주경 교사는 “가야금을 통해 국악에 대한 아이들의 호감이 높아졌다”며 “전문 강사인 송정아 교사가 산조 가야금뿐 아니라 풍류 가야금, 17현 25현 개량가야금 연주를 들려줘 감상능력도 많이 발달했다”고 귀띔했다. 김 교사는 “가야금은 소리가 맑고 깨끗해 정서적으로 차분해지고, 양손을 섬세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지적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며 “가끔 2, 3학년 학생들도 점심시간에 가야금실에 와 1학년 때 배웠던 가야금을 연주하며 행복해한다”고 덧붙였다.
# 실력함양 프로젝트
수준별수업 교육과정 혁신 학업성취도 중랑구 1위
2010학년도부터 교육과정 혁신학교로 전교과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는 원묵고는 교육과정 자율의 폭이 넒은 자율형 공립학교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학습 격차가 큰 과목인 수학, 영어, 과학 과목을 전 학년에 걸쳐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고, 수학과 영어의 경우 ‘학급 수+1’의 운영체제를 통해 좀 더 밀도 있고 내실 있는 수준별 수업이 진행된다. 50분 2회 연속수업인 블록타임제를 전교과, 전학년에 도입해 1일 학습 교과목 수를 줄임으로써 교과교실제로 인한 학생들의 이동을 최소화하고 2시간 연속수업을 통해 다양한 교수-학습 모형을 적용한 수업을 하고 있다. 또 1학년 기술‧가정, 국사, 음악, 미술과목에 집중이수제를 도입해 이수 단위수가 낮은 과목의 밀도 있는 수업 또한 꾀하고 있다.
박평순 교장은 “지역 특성상 입학 시 대부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은 편이지만 교사의 열정과 교육과정 혁신학교, 방과후학교 운영 등으로 학습능력이 괄목할 만한 향상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일 발표된 2학년 학생들의 전국학업성취도평가(7월 실시) 결과 서울 전체 고교 중 상위 30%, 중랑구 1위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방과후학교 & 방학중학교- 강사 선택제, 특기적성 교육
아침학교, 방과후학교, 토요학교, 방학중학교 등 원묵고의 방과후학교는 연중(年中)체제로 다양하게 운영된다. 아침학교는 정규 수업 전 도서관 활용을 통한 독서‧토론‧논술교육과 체육‧음악 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진다. 토요학교는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토요 휴업일)에 오페라, 뮤지컬 감상을 비롯 학생들이 원하는 체험활동 위주로 실시된다. 방과후학교는 강사 선택제를 통해 학생 선택권이 보장되며 40여 개 다양한 전문 강좌 개설 및 수준별 운영, 외부 강사를 활용한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물론 방학 중에도 연속적으로 강좌를 운영, 사교육 요구를 학교로 흡수하고 있다.
박 교장은 “‘1인 1운동’ ‘1인 1특기’를 장려해 학생들이 자신만의 ‘끼’를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처음엔 ‘내가 왜 공모 교장에 응모했을까’ 싶을 정도로 힘도 많이 들었지만 학력신장과 전인교육을 동시에 이뤄내는 공교육의 저력이 보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지난 3년을 소회했다.
오전 7시30분 아침학교로 시작해 오후 8시30분 방과후학교로 하루가 마감되는 원묵고. 빠듯한 일정이지만 이 곳 원묵고의 교육과정을 ‘원해서’ 온 교사와 학생들의 표정엔 열정과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과 수많은 체험으로 스스로를 창조적 인물로 만들어 가고 있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의 꿈을 향한 한걸음을 지원하는 교사들의 모습에서 공교육의 미래와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