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5 (금)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시론> 젊은 교육자와 함께 나누고픈 세밑 소망

최근, 졸업 후 곧바로 교사가 되었던 제자가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라며 찾아왔습니다. 자기 또래 친구들은 자기 발전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거나 대학원에 다니면서 취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자기만 일찌감치 평생직장을 갖고 별 생각 없이 생활을 하다보니 뒤처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젊은 나이에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갖게 되는 것은 축복일수도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으며, 어느 쪽이 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대부분 젊은이들은 불안한 미래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처절하게 때로는 큰 기쁨 속에서 그 파도를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반면 평생을 보장받는 교직에 들어선 축복받은 신규교사는 외부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잘 아는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과거 교수 업적 평가가 강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는 교수가 되면 자기 목적을 다 이룬 사람처럼 잡기에 빠지거나 편하게 쉬려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기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는 교수들도 많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교수가 되었어도 1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 학계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 학교에서 학생들이 존경하는 정도, 그리고 자기만족 수준에서 커다란 차이가 생깁니다. 대학시절을 돌이켜보면 존경할만한 교수와 그렇지 못한 교수가 떠오를 것입니다. 이는 그 교수가 임용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왔느냐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그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끊임없이 달려야 겨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사는 일반 직장인들보다도 훨씬 더 앞서가야만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만일 졸업 후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끝없이 뒤로 밀려가게 되어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갈수록 두려워질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인지조차 잘 몰라서 고민하며 미안한 감정으로 학생들 앞에 섰던 젊은 교수 시절에는 내 나이가 더 들고 경륜이 더 쌓이면 강의를 더 잘 할 수 있게 되고, 학생들도 나를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교수법이라는 책까지 써내며 나름대로 교수법을 갈고 닦았지만 오히려 학생들이 점점 더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내 스스로의 착각과 달리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점차 뒤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방송사와 함께 ‘세계 최고의 교수’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찾아가 만났던 교수 중에는 60이 넘은 교수도 몇 명 있었습니다. 이들을 보며 학생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은 내 나이 탓이 아니라 내가 더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지 않아서 임을 새롭게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학생이 되기로 했습니다. 가르치는 내가 공부와 연구를 좋아할 때에만 학생들도 나를 통해서 행복한 배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와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내 생계수단으로 삼는다면 이는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선생님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영원한 학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새해에는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가슴과 지혜의 젊음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배움의 길로 다시 나서고자 다짐해봅니다. 멀리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며 마음의 스승도 새롭게 모시고, 함께 얼굴을 맞대고 공부할 행복한 배움터도 만들고 싶습니다. 그 배움의 길목에서, 학생과의 만남에 대한 설렘으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이 소망을 함께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