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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공모(公募)는 무슨, 공모(共謀) 교장이지”

이념·학연·지연…정치판 '교장공모제'에 지쳐가는 학교

교총 "교섭 통해 공모 비율 20% 관철할 것"

교장공모제가 도입 6년째를 맞았지만 정착은커녕 오히려 이를 둘러싼 갈등만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학교 특성에 맞는 교장을 초빙해 학교경영의 적임자를 선발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실시과정에서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정치적 지지 세력의 승진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큰 폐해가 드러나고 있는 것.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공고 전부터 특정 지원자의 내정설이 심심치 않게 나도는 등 전문성과 책무성이 부족한 학교운영위원회 중심으로 꾸려진 교장공모심사위원회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빈번히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심사결과에 대해 소송이 제기되고 집단 등교거부 사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서울‧경기‧광주‧강원 등 소위 ‘진보 교육감’ 지역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끼어봤자 손해라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기 A초 B교장은 “본인이 안 되면 집안 누구라도 교육감(장)과 동향이나 동문이 있어야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는 말이 우스개만은 아니다”라며 “교육청에서 손바닥 뒤집듯이 순위가 바뀌어 버리는 데 ‘공모(公募)’는 무슨, 공모(共謀)지”라며 자조했다. 이 지역의 한 교감은 “공모에 응하려다 압력까지 받았다”며 “원서를 제출하러 갔다가 수모를 겪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지방 소도시로 갈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강원도의 한 교장은 “교감으로 수년째 재직 중인 한 선배가 ‘내가 이 나이에 새파란 학운위원들 찾아가 막걸리 따르고 굽실거리면서 교장 돼야 겠냐’며 ‘이럴 바엔 교장하지 않겠다’ 하시더라”며 혀를 찼다. 그는 “이래서야 정작 학교 일에 열심인 유능한 교감들이 교장이 되는 길만 막을 뿐”이라며 “교장공모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남에 거주하는 학부모 C씨는 “젊음, 잘생긴 외모, 달변, 남성이 교장 공모를 위한 4가지 필수조건이라고 하더라. 학교를 책임지는 교장선생님을 이렇게 뽑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학운위 심사의 비전문성을 꼬집기도 했다. 이렇게 남성을 선호하는 사회적 편견 등으로 인해 지난해 3월까지 교장공모를 통해 교장이 된 여교사는 38명으로 전체 375명의 10%에 불과했다.

교장공모제 실시 이후 한층 심해진 승진 적체도 문제다. 과거에는 통상적으로 교감에서 교장승진까지는 5~6년 정도가 걸렸으나 공모제 실시 이후 7~8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교장자격증을 남발해 후보자 간 경쟁이 심화됐고, 공모교장 근무기간 4년이 교장 임기 8년에서 제외되면서 교장 임기가 최대 12년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천 D초등교 E교감은 “요즘 교감들은 하루 종일 행정 처리하느라 책상에서 일어날 틈도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승진에 대한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공모제라는 미명하에 교장 자격증을 남발해 놓고 교장 승진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니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푸념했다.

공모를 위해 필요한 실적 쌓기나 임용 후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중한 업무도 교원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서울 F초 G교사는 “공모교장은 실적을 내야하기 때문에 백화점식 프로그램을 남발해 교사들이 무척 힘들어 하고 있다”며 “학부모들이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아할 수도 있지만 1회성 행사들만 가득한 겉치레일 뿐 내용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교총은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 현행 40% 정도인 교장공모제 비율을 20%로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2011~2012년도 교총-교과부 단체교섭 핵심과제로 천명했다. 승진 적체 해소를 위해 공모교장 재임기간을 교장 중임 횟수에 포함하는 방안도 교과부에 제안해 놓았다. 안양옥 교총회장은 “이 상태로 몇 년만 지속되면 현장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반드시 교섭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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