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전화벨 소리가 급히 울렸다.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찾는 그 목소리는 바로 제자로부터 온 전화였다. 다음주 토요일 동창회에 나를 모시겠단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쾌히 승낙했다.
순간 나는 30년 전 과거 속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지만 고장난 컴퓨터처럼 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하고 난감한 일이 아닌가? 모이는 장소는 초등학교 모교 근처 음식점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살이지만 제자와의 만남은 그 무엇에 비유할 일이 아니다. 가장 행복한 만남이 바로 닥쳐오지 않는가? 30년이 지난 지금 학창시절의 여러 추억을 되살려 이야기하고 대화를 한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는 전화를 받은 그 날부터 제자를 만난다는 즐거움에 한껏 들떴다. 그리고 한편으론 지우개로 지워버린 제자들의 얼굴을 생각해 내느라 애도 많이 먹었다.
반장은 누구였지…누가 공부를 잘하고 장난꾸러기는 누구였더라…달리기는 누가 잘했나…. 공책에 기록하듯 머릿속을 정리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바래지고 낡아버려 되살아나지 않았다.
드디어 약속한 날. 30년 만에 나는 제자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3시간 이상의 먼 거리였지만 만남의 호기심 속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세월의 흐름 속에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집이 들어서고 강산도 많이 변하였지만 그보다 제자들이 더욱 많이 변해있었다.
앳된 소년의 얼굴에는 불혹의 나이를 말해 주듯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이 생겨 있었다. "스승님"이라고 불러주며 넙죽 큰절을 하는 제자들에게 앞에서 눈물을 감추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아이들에게 죄라도 지었던가. 자꾸만 제자들 앞에서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만 스쳐갔다. 아무튼 우리들은 세상사는 이야기, 학창시절의 즐거웠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가장 짧은 하루를 보냈다.
30년 만에 만난 제자들을 보면서 역시 교직은 천직이며 보람이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교권이 추락하고 교실이 붕괴되었다고 난리들이지만 대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