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중심으로 운영되는 교육과정
수업 파행은 물론 ‘과목편식’ 야기“교육주체인 교사 의견 반영해야 성공” 2018학년도부터 전면 도입되는 고교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의 핵심은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제도의 불협화음을 해소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8일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2차 국가교육과정포럼에 참가한 교사들은 “일반고에서 ‘잠자는 교실’로 대표되는 수업 파행이 계속되는 건 교육의 목적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원춘 경기 창곡중 수석교사는 탐구 과목 수업 시수의 감소를 예로 들었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기초 영역(국어·영어·수학)의 필수 이수 단위는 30단위, 탐구 영역(사회·과학)은 20단위다. 대신 교과별로 20%에 한해 증감 운영이 가능하다. 학교 현장의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하라는 의미다.
이 수석교사는 이를 지적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입시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기초 영역에 해당하는 과목의 수업 시수는 늘리고 사회, 과학 등 탐구 과목은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능에 불리한 과목의 수업 파행에 대한 부분도 논의됐다. 수능에서 선택할 수 있는 탐구 과목 수가 최대 3과목에서 2과목으로 축소된 데다 일부 대학에서는 2과목 가운데 1과목만 입시에 반영하면서 수업을 등한시 하는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수석교사는 “우리 사회가 바라는 통합형 인재를 길러내려면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과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면서 ‘통합과학 교과 도입’을 제안했다. 1·2학년 때 통합과학을 배우고 3학년 때 진로에 맞는 심화 과목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수능도 통합 교과내용을 바탕으로 치르고 대학별 고사를 통해 진학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국어 교과 주제 발표자 정경조 경기 계남고 수석교사도 “수능에 국어 교과별로 몇 문항이 출제되느냐가 수업 운영의 핵심이 돼버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화법은 입시 면접을 대비하는 수업, 작문은 논술을 준비하는 수업으로 운영되기도 한다”면서 “어떤 수업은 문제 풀이식으로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일반고의 특성상 수능과 입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교육과정 요소가 무시된 채 수업이 운영된다는 이야기다.
수학 교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제 발표를 맡은 박근덕 강원 사내고 수석교사는 “인문계를 선택한 고등학교 3학년생의 80%가 수학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의 경우 수학 보충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다”고 전했다. 또 “이 같은 파행을 막는 길은 수능을 인문계와 자연계로 나눠 치르는 대신 진로와 대학 수업 이해에 필요한 내용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럼 참가자들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를 표현했다. 정일화 대전전자디자인고 수석교사는 “현재 우리나라는 대입제도가 모든 교육과정을 뒤흔들고 있다. 성급하게 개정하다 보면 자칫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단계별 목표를 정해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충북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 소속된 한 교사는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포럼의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반영될지 의문”이라면서 “교육과정 개정을 논하기보다 대입제도부터 손보는 게 순서”라고 꼬집었다.
학부모 이주욱(충남대 교수) 씨는 “지난 교육과정 개정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지옥’같은 상황이 연출됐다”면서 “이번 개정이 성공하려면 교사들의 이야기를 반영하는 게 핵임”이라며 교육의 주체인 현장 교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