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쓴 교단일기 바탕으로
최근 시집 ‘교실-소리 질러’ 출간
고교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담아
제자들이 직접 고른 시로 구성해‘곁에만 가면/안아 달라고 두 팔을 활짝/펼치는 제자가 있다.
화장실에서 만나도 포옹!/계단에서 만나도 포옹!
수업 중에도/녀석 근처로 다가가면 포옹!/와락, 웃는다.
“야, 징그러운 놈아,/강아지냐? 맨날 안아 달라고 하게.”
“제가 선생님을 껴안은 거예요. 모르셨어요?”
이 세상을 몽땅 껴안을 것만 같은 녀석이다.’ <교실-소리 질러 중 포옹, 와락>
그의 시에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난다. 좋은 수업에 대한 철학이 오롯이 담겼다.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학교생활을 여러 편의 버라이어티로 탈바꿈시켰다.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말 그대로 ‘교육현장 도록(圖錄)’이다.
‘날 것’의 고등학교 현장을 담은 시집 ‘교실-소리 질러’를 펴낸이는 장인수 서울 중산고 교사. 교단에 선 지 23년째인 그는 2003년 정식으로 등단해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시인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만난 장 교사는 “20여 년간 꾸준히 썼던 교단일기를 정리해 시집으로 엮었다”고 설명했다.
“교사 초년 시절부터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일기, 소설, 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매일 있었던 일과 생각을 써내려갔지요. 완성된 시 가운데 시집에 실을 작품은 제자들이 직접 골라줬습니다. ‘좋다’는 평가를 받은 것들만 가려냈죠. 책 제목 선정도 아이들에게 맡겼어요. 후보에 오른 다섯 개 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걸 최종 결정했습니다.”
‘교실-소리 질러’라는 제목은 ‘교실은 조용하고 엄숙하다’는 고정관념을 깨자는 의미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보다는 질문이 오가는 수업을 지향하는 그의 교육철학과 맞닿아있다. 교실은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곳이라 믿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소재가 됐다.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 아이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시적 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늦잠을 자서 머리를 못 감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무리 그래도 머리는 좀 감고 다니자’고 얘기했죠. 그랬더니 한다는 얘기가 ‘선생님, 햇빛에 비치니까 하얗게 벚꽃이 핀 것 같지 않아요? 멋있죠?’였어요.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죠.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고민 없이 시로 써내려갔죠.”
생각에 잠기는 순간도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사물함을 비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담임도 버리다’, ‘헛소리’ 이야기다. ‘담임도 버리다’는 가르치던 아이들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원섭섭한 마음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헛소리’에는 수능을 망쳐 졸업장조차 받아가지 못하는 제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녹여냈다.
장 교사는 “이번 시집은 지난 교직생활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전환점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감동적인 만남입니다. 부모님 다음으로 가까운 곳에서 진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에요.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죠.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을 애용하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필요할 때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끝까지 교단에 남아있을 겁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과 교사들이 ‘교실-소리 질러’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