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학제가 12년제에서 13년제로 전환되고 있다. 교육 경쟁력 제고를 명목으로 지난 10년간 추진돼온 교육개혁이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독일 교육은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오전수업만 하던 중등학교가 종일반을 도입했고, 학교별로 치뤄지던 아비투어(대입시험)가 주가 주관하는 중앙집중식으로 바뀌기도 했다. 학제도 13년에서 12년으로 축소됐다. 이 모두가 교육의 경쟁력 제고라는 이름하에 시도된 교육개혁의 결과물들이다.
독일이 전통적인 13년제 초중고 과정을 12년으로 축소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PISA쇼크’로 불리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였다.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독일교육제도는 경쟁력을 상실한 교육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제 비교시험에서 같은 학년이라도 12년제 국가들의 학생과 학습 진도 면에서 차이가 나 실력이 더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며 학제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어 본격적인 개편이 시작된 것이다. 2001~2002년 자아란트주를 시작으로 지난 10년 동안 대부분의 서부독일지역 학교들은 12학년으로 바뀌었다.
초중고 총 학제가 13년에서 12년으로 바뀌면서 독일교육계는 한동안 두 개 학년이 같은 해에 대학입시에 응시해야 하면서 터보아비투어(Turbo Abitur)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혼란에 휩싸였었다. 학교는 부족한 수업시간을 채우기 위해 종일반을 도입했고 급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넓히는 공사로 수년 동안 어수선 했다.
그렇다면 과연 교육현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독일 사회의 교육개혁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위에서 내려오는 개혁과 법적인 제재가 명문대를 향해 질주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듯, 독일 역시 정부에서는 국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경쟁력을 불어넣고자 하나 교직사회와 학생,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독일 학교의 현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교육에 대한 사회의 시각은 한국과는 반대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교사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경쟁을 경멸하게 하고 함께하는 학습을 가장 가치 있는 공부라고 가르친다. 교실에서 제일 존중받는 친구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회적인 사람이다. 외향적인 변화와는 달리 독일교육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개혁의 효과인지 최근 독일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받아내고 있다. 이로 인해 교육개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제가 12년으로 줄어들면서 학생들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여가 활동시간이 부족하다는 불만은 계속됐다. 교육당사자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모두 반대하는 12학년제는 최근 13학년제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니더작센 주는 2015년 올해 입시생부터 아비투어를 12년과 13년 각각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단계적 폐지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와 슐리스빅 홀슈타인 주도 많은 김나지움들이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 학교가 13년제의 회귀를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바이에른과 함부르크 주는 주민투표를 통해 합의를 이루어갈 예정이다. 또한 헤센주는 김나지움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도록 결정권을 개별 학교에 위임했고, 해센주에 소속된 프랑크푸르트시는 25%의 김나지움들이 이미 학제를 13학년으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3년제로의 회귀는 늘어난 학습량으로 인해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이긴 하다. 그러나 모두가 공감하는 더 큰 이유는 여가시간 부족이다. 독일학생들에게 방과 후에 하는 스포츠나 음악활동은 학교 공부만큼 중요한 여가시간이다. 종일반으로 인해 오후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적으로 취미활동도 여유롭게 할 수 없으니 공부 때문에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