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은 학생들이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사회에 나가는 관문인 고교생활. 그 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밖에 없는 담임의 역할. 때로는 나의 모난 점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나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가 있었다. 때로는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스승의 날 칠판에 뭔가를 가득 채워놓고 기다려주는 아이들을 보고 힘을 얻기도 했다.
사실, 나를 거쳐 간 학생들이 모두 ‘기적’이처럼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더욱 교사다웠다면 그들의 미래가 더 밝아졌을 것이라는 후회 아닌 후회가 드는 이유다. 3학년 때에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더 해줄 것이 없을까 해서 새벽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사실, 나는 그들의 인생에 끼어들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가갈 방법 또한 묘연했다. 결국, 뒤돌아보면 아이들은 제각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로 결심한 것 자체만으로 감사하다.
아내와 나는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 ‘기적이’ 얘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했던 형이 있었다고 말이다. ‘기적이’ 같은 아이가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다. 이런 아이들은 겉보기와 달리 정서 속에 ‘함몰웅덩이’를 가지고 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한쪽 구석의 빈공간이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필수적이다. 교사가 이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마음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