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교사로 2년째 관사 생활
고립·책임감은 평온함이 보상
유일한 제자 6학년 정수랑
종일 함께 먹고 놀고 공부도…
요즘 학예회 기타공연 연습
또래친구 없어 안타깝고 미안해
내년 폐교 섭섭하고 실감 안나
마을 생각하면 작은학교 살려야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위치한 근덕초 노곡분교장은 시에서 차로 30여 분 떨어진 오지에 있다. 교사 한명에 학생 한명. 구성원도 단출하다. ‘우당탕’, ‘시끌벅적’ 소리가 가득한 보통 학교와 달리 시골 분교는 한적했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솔솔 불었다.
기자가 방문한 시각 이성균 교사는 정수(6학년)와 도덕 수업이 한창이었다. 교탁은 필요 없어 보였다. 정수는 교실을 반으로 쪼갠 공간에서 선생님 옆에 책상을 붙이고 앉았다. 아담한 교실에는 컴퓨터 두 대와 기타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수업은 ‘공정’의 개념을 배우다가도 ‘비례배분이 뭐였지?’하며 수학으로 넘나들었다. “아~ 이해가 안돼요, 다른 거 해요. 쌤~”하고 정수가 어리광을 부리자 이 교사는 “이거 한 달 전에 배운 건데, 기억 안나? 여기까지만 보자”며 정수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바로 채워주고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선생님과 제자라기보다 사촌형, 동생 사이 같습니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친할 수밖에 없죠. 정수가 또래 친구가 없으니 쉬는 시간에도 축구나 탁구, 알까기 같은 것을 하면서 같이 놀거든요. 작년에 세 명 이었을 때는 자기들끼리 운동장에서 축구, 피구도 했었는데…. 아쉽긴 해요.”
-하루 종일 아이와 있으면 업무 시간이 부족하진 않나요?
“아침에 출근해서나 오후 시간에 짬짬이 해요. 주말에 와서 할 때도 있고요. 여기서 지내니까 시간 제약이 별로 없어요.”
-여기 지낸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학교 옆 관사에서 살고 있거든요. 원래 집은 서울입니다.”
-아, 들어오면서 봤습니다. 열악해 보이던데.
“조금요. 안에 화장실이 없어요. 조그만 싱크대 같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 샤워기를 연결해서 써요. 그래도 기름보일러는 있으니까 괜찮습니다.(웃음)”
-그럼 주말에도 보통 학교에 계시는 건가요?
“일요일에는 정수랑 같이 근처 교회에 다녀요. 토요일에는 서울에도 가고 개인적인 일도 보고요. 그나마 올해는 나아요. 작년에는 학생이 셋이어서 토요스포츠교실 데려다주느라 사생활도 없다시피 했어요. 평일에도 집이 먼 아이는 직접 데려다줬거든요.”
-힘들겠군요. 이 학교는 어떻게 오게 됐습니까.
“대학 때부터 한번 쯤 작은 학교에 근무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20~30명의 학생들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것보다 한 두명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집중해서 대하고 싶기도 했고요. 첫 발령지인 도계초 근무가 끝날 무렵, 젊을 때 아니면 하기 힘들 것 같아서 자원했습니다. 이제 2년째네요.”
-혼자 근무하려니 외롭진 않으십니까.
“아무래도 고립되는 느낌은 좀 있죠. 무엇보다 책임감이 커요. 이 학교는 내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같은 거요. 큰 학교면 자기 학급만 챙기면 되는데, 혼자니까 아무래도 손 댈 게 많죠. 도와주시는 주무관님이 계시긴 하지만 저 역시 복도부터 시작해서 교실마다 각종 기자재며 환경미화까지 직접 관리하고 챙겨야 하거든요.”
-낭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밤에 나오면 별이 얼마나 잘 보이는지, 평온하고 좋아요. 처음에는 답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넓은 운동장이 다 내 공간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올해부터는 지역 주민분이 주셔서 강아지도 키우는데 앞으로는 아파트 말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교사 한명에 학생 한명….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이던가요.
“근덕초에는 네 개 분교장이 있는데 이번 금요일에 다 같이 모여서 학예회를 해요. 정수와 저는 통기타 연주를 하기로 했거든요, ‘나는 나비’와 ‘제주도의 푸른 밤’을 연주할 거예요. 그래서 어제도 공연 때 입을 옷을 사러 정수랑 시내에 나가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었어요. 큰 학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죠.”
-연습은 많이 하셨나요.
“오늘 6교시가 음악이라 같이 연습하고 방과 후에도 좀 더 이어서 할 계획이에요. 아직 부족해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거든요.”
-작은 학교에 근무해보니 어떤가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아이한테 미안해요. 모둠활동 같은 걸 할 수 없으니 다양한 수업 진행이 어려워요. 아무리 제가 옆에 있어줘도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배우는 게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의 결핍이 안타깝죠. 시간이 지나 추억을 공유할 친구들이 없는 거잖아요.”
-미안한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
“더 많은 걸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요. 작년에는 3명이어서 복식수업을 했는데, 매일 6교시를 혼자 하는데다 아이들 편차가 너무 커서 고초를 겪었죠. 우수한 아이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니까 방치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이에게 더 집중하다보니, 잘 하는 아이가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더라고요.”
-어떤 교사가 되고 싶나요.
“수업 잘하는 교사요. 아이들이 저를 친근하게 느끼는 건 다행인데, 제가 수업을 재밌게 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서요. 제가 재미있어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제 수업이 좋아서 저를 더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할겁니다.”
1960년 노곡면에는 12살 이하 어린이 2054명이 살았지만 2010년 들어서면서는 615명으로 줄었다. 우체국, 경찰서 등이 떠났고 1930년에 개교한 노곡분교도 유일한 학생인 정정수 군이 졸업하면 자연 폐교된다. 인근의 근덕초 마읍분교 역시 통폐합이 결정된 상태여서 내년이면 노곡면에는 초등학교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자신을 끝으로 근무했던 학교가 사라진다는 기분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아직은 실감이 잘 안나지만 폐교 후 시간이 지나면 많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학생 1명과 단 둘이 수업할 기회도 없을 거고, 학교에 혼자 근무할 일도 거의 없을 테니까요.”
-앞으로 학교는 어떻게 이용되나요.
“아직 지역에서도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태라 일단은 문을 닫게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동문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졸업하신 어르신들도 걱정하시더라고요. 체육대회가 2년에 한번 열리는데, 앞으로는 어디서 하냐는거죠.”
-안타깝네요. 학교를 살리고 싶어도 학생이 없다는 게.
“네. 자연 폐교되는 거예요. 마을에 정수 밑으로는 아이가 없어요. 젊은 부부도 없고, 어르신들만 남았으니까 방법이 없는 거예요. 원래 여기 주변이 면사무소, 소방서도 있는 동네 중심지거든요. 그나마 학교마저 없어지면 마을이 더 황폐화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내년에는 어디로 가실건가요.
“원주로 갈 생각입니다.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곡분교보단 큰 학교겠죠?(웃음)”
-올해는 어떻게 마무리할 계획입니까.
“폐교를 하게 되면 학교 안에 모든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는군요. 책 한권, 책상 하나 남김없이 폐기처분하거나 본교로 이동시켜 완전히 빈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 대요. 내년 2월까지는 정수가 나올 테니 어느 정도까지 정리해야 할지는 막막하지만 조금씩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올 겨울방학은 일정을 비워 둔 상태입니다.”
-물건들을 빼면 정말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빈 공간을 보면 느낌이 다를 것 같기는 해요. 아이들이랑 여기서 기타 쳤었는데, 축구 했었는데 하면서 생각이 나겠죠.”
운동장으로 나오자 이 교사가 밑동만 남은 나무 두 그루를 가리켰다. 재작년 폭설로 나무가 꺾여 벨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80년 넘은 나무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학교도 학생이 없으면 소용없다. 그렇다고 베어버리면 그만일까. 노곡분교도 밑동이 드러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