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 학교마다 한번씩 있는 수학여행은 학창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특히 여행을 다닐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충분치 않았던 과거에는 수학여행이 학생들에게 새로운 곳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내 각지는 물론 해외로 떠나는 여행까지 늘어 수학여행이 갖는 의미가 많이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수학여행의 시기와 장소가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4,5월이나 10월이 되면 한 학년 전체가 모여 관광버스를 타고 경주나 설악산으로 떠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프로그램도 판에 박힌 듯 똑같다. 차례로 줄을 서서 유적지, 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다시 줄지어 서서 식사를 한다. 밤에는 숙소에서 캠프파이어나 장기자랑, 댄스파티 등을 벌인다. `수학(修學)'의 의미는 사라지고 `여행'만 남은 셈이다.
매번 비슷한 수학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매년 같은 곳으로 떠나야 하는 교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지가 경주 아니면 설악산인 이유는 국내에 수백 명의 학생들을 수용할 숙박시설을 갖춘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학교에서는 이러한 일률적인 수학여행에 대한 대안으로 이러한 소그룹별 여행을 시도하고 있다. 학급별, 혹은 조별로 소규모 여행을 떠나게 되면 숙소에 대한 부담을 덜게돼 다양한 여행지를 선택할 수 있어 여행지의 특성에 맞는 색다른 프로그램을 시도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체험을 통해 학교 밖 현장에 대해 배우고 학교교육과의 연관성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성심여고에서는 4년 전부터 소그룹별 여행을 실시하고 있는데, 명칭도 수학여행이 아닌 `주제별 현장학습'으로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4월이나 10월이 아니라 매년 7월에 현장학습을 떠난다. 7월 기말고사가 끝난 후 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학생들이 다소 해이해지기 쉬운 기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현장지역이 덜 붐비고 숙소 예약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작년의 경우, 교과와 관련 있는 11가지 주제를 교사들이 선정, 1,2학년 전체 학생들이 이들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주제는 `하회마을에서의 사흘', `갑오농민전쟁과 문학', `오대산 생태기행', `남도기행', `농촌체험' 등이었으며, 학년에 관계없이 주제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현장학습을 떠났다.
교사들은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직접 각 지역을 사전 답사하고 지난해에 있었던 현장학습 자료를 참고해 프로그램을 개선해 나간다. 학생들도 미리 책과 인터넷 등을 이용, 관련자료를 조사하기도 한다.
이 학교 노창일 교감은 "비용도 오히려 다른 학교에 비해 적게 든다"며 "학부모님들의 호응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그룹 현장학습에서 교사들의 책임은 오히려 늘어난다. 노 교감은 "선생님들이 여러 곳을 사전 답사해야 하고 인솔교사가 소그룹별로 함께 해야 하는 등 교사들의 부담이 매우 커졌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여러 소그룹으로 나눠져 움직이다보니 학생 관리 면에서 굳塤鍍湧?책임져야 할 부분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선 교사들은 "수학여행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많은 학생들이 동시에 이동하게 해야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단이탈, 안전사고 등이 모두 인솔교사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시라도 학생들이 음주나 흡연을 배우거나 여행 후 해이해지지 않을까 하고 신경을 쓰다보면 교사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다.
경기 부천 대명초 이호연 교감은 "인솔교사나 관리자가 아이들과 직접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수학여행에서 가장 힘든 점"이라며 "이외에도 숙박시설에서의 식사지도, 생활지도 등을 하다보면 여행기간 동안 선생님들은 거의 탈진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광주체고의 정대연 교사도 "여행 중 교사들은 학생들 인솔하느라 정신이 없다"면서 "학생들에게는 여행이 즐겁겠지만 뭔가 `수확'을 얻게 해야 하는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괴롭고 힘든 기간"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수학여행이 단순 유흥을 넘어서 `교육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철저한 사전준비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정 교사는 "수학여행 후에 반드시 기행문을 쓰도록 하고 그것을 국어 수행평가에 반영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메모하고 사진찍는 모습을 보면서 수학여행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느꼈다"면서 "종합예술제 때 수학여행 기행문으로 전시회를 가졌더니 `참다운 예술'이라며 한 대학교수도 자료를 빌려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정 교사는 "만약 기행문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이 술 마시거나 담배를 배우고 그저 놀러가는 것에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을 강원 인구초 교감도 "여행일자는 학교에서 정해 주되 5, 6명씩 조를 편성, 2개월 정도 계획을 세워 여행을 다녀온 후 보고서를 검토해 성적에 반영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자"고 제안했다. 윤 교감은 "계획을 세우는데 상당한 어려움과 시일이 걸릴 것이고, 특히 교사들이 많은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모든 문제는 교사들이 얼마나 교육적으로 지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강현중 이창희 교사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수학여행을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그 지역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사전에 치밀한 준비도 필요하다"며 "교사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런 준비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한 안전사고 대책을 미리 마련하고 수학여행을 계획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는 등 교사들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 교사는 "학교 관리자 측에서는 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런 행사 자체를 꺼리게 된다"며 "현재와 같이 모든 사고를 학교측이 책임지는 상태에서는 위축된 수학여행이 실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수학여행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의식 개혁과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부산 강동초 문삼성 교사도 "수학여행 이름 그대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이고, 생각하고, 느끼며 공부하게 하고 싶지만 결국은 `안전제일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면서 "바람직한 수학여행이라면 교실에서 배운 것을 확인하고 우리 것에 대한 긍지를 갖게되는 여행이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나 경비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문 교사는 "현재 체험학습도 출석으로 인정되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족단위로 휴가여행을 하고 있다"면서 "학교의 일률적인 수학여행 대신 몇 가지 과정을 안내한 후 가족단위 여행을 실시,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족여행이 곤란한 학생들은 사전 협의를 통해 다른 아이들의 여행에 위탁하도록 하고, 가족여행으로 또래 놀이 시간이 줄어든 것은 소풍 등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문 교사는 또 "수학여행에서 청소년 단체 활동을 비전문 교사에게 맡겨 활동자체가 소극적이고 형식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단체에서 전문 지도자를 파견,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규순 서울 장위초 교사는 "지금까지의 수학여행은 사전준비가 부족해 소비적·일회적 관광에 불과했다"며 "수학여행경비 중 교육비를 책정해 자료집을 제작하고 체험학습을 위한 강사비, 재료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사는 "봄·가을로 공식화된 획일적 여행기간을 탈피하면 숙박, 식사, 전세버스 등 각종 이용료를 절감하고 여유 있는 프로그램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