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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리포트(미분류)

대학개혁 신호탄 될까

일단 실망스럽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참여정부 출범부터 군수출신 행자부 장관, 영화감독 출신 문광부 장관,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 등에 이르기까지 개혁을 기치로 내건 실험적 인사는 급기야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 관료 출신 교육부총리의 기용으로 이어졌다.

당장 교육계부터 반발이 만만치 않다. 사사건건 정책과 이념의 차이로 마찰을 빚던 각종 교육단체들도 이번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분을 교육 수장에 기용한다면 이는 교육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짓밟는 처사라며 일단 부정적인 운(韻)을 띄었다. 그러니 또다시 산적한 교육현안은 제쳐두고 허구헌날 대립각만 세울까 걱정스럽다.

'김진표 카드'의 최대 약점은 전문성 결여다. 물론 경제부총리 재임 시절에도 틈나는 대로 교육에 훈수를 둔 일은 있다. 우수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분야도 경쟁을 통해 수월성을 확보해야 된다며 시장원리를 누차 강조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마치 교육을 경제의 하위개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어 교육철학의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미약하지만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교육문제만큼은 예수님도 해결할 수 없다는 탄식이 교육자들 입에서 나올 정도라면 이미 교육 자체의 내부 조절기능이 상실됐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병이 깊다. 그동안 교육 전문가 출신의 교육 수장을 꾸준히 임명했어도 난마처럼 얽힌 교육문제를 속시원히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차라리 외부 인사의 영입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노대통령은 여론의 반발을 무릎쓰면서까지 대학개혁의 적임자를 물색한 듯 싶다. 그것은 서울대 개혁의 산파역을 자임했던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나 경제통으로 불리는 민주당 김효석 의원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교육수장으로 낙점된 김진표 의원이 하나같이 시장경제의 원리에 능통하다는 점이다. 결국 외부인사의 영입을 통해서라도 더 이상 경제와 대학교육이 따로노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대학교육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인 스위스 국제경제개발연구소(IMD)의 보고서를 인용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조사대상 30개국가 중 한국의 대학교육경쟁력은 사실상 최하위나 다름없는 28위로 나타났다.

그에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만 15세(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와 국제교육평가협회(IEA)가 만 13세(중2)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비교연구(TIMSS) 결과를 보면 우리 청소년들이 부문별로 최상위권에 위치해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우수 학생 유치에만 혈안이 된 대학이 인재양성은 커녕 오히려 인재를 고사시킨다는 지적이 하나도 틀린 것이 아니다.

사실 교육 수장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교육 정책에 따라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영광보다는 질타가 쏟아지는 가시방석같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대학교육에 있다. 한 해에도 노벨상을 몇 명씩 배출하는 대학의 경쟁력이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흉내만내는 대학개혁만으로는 국가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개혁은 어디까지나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명품(名品) 대학의 육성에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신임 교육부총리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할 과제가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개혁에는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다. 예상되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적임자가 '김진표 카드'라면 일단 기대를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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