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교사였던 나는 공립학교 교사로 특채돼 강화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시골이라 선뜩 강화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진급에 많은 혜택이 있어 여러 교사들이 선호하는 벽지라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평소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은 말하곤 하였다.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전직한 것도 무엇인가 뜻하는 바가 있어 원한 것이니만큼 갈팡질팡 하던 차 인천 시내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강화고등학교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부단한 노력은 성취의 기쁨을
자동차를 타고서도 무려 한 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강화고.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다가오는 ‘學如不及(학여불급)’이란 4자성어가 첫인상에 닿았다. 시골이라는 생각만 하고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던 내 기억으로는 학교라는 곳은 그저 건물이 있고 학습에 필요한 것이란 별로 본 것이 없어 강화고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학습에 대한 강한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좀더 본관 건물로 들어서자 나는 건물 외벽을 보고, 내부를 들여다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 마치 폐가를 연상케 했다. 내부에는 기름으로 불을 피우는 난로가 연통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내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창틀은 낡아 여닫기에 불편했다. 현대 공립학교가 이렇게 되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그린 적이 없었다. 시내의 호화스런 공립하교 건물들. 내부의 최신형 컴퓨터 등이 사립학교에 비해 너무나 앞서 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월이 되어 교직원들간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운동장에 가끔 공을 차고 있는 학생들이 자주 눈에 띄어 체육 시간이 아닌데 왜 학생들이 이렇게 공을 자주 차는가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이 학교 축구부라고 기존에 재직하고 계시던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나는 이런 시골에도 축구부가 왜 있나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였다.
그 이후로 시합에 나가는 경우도 자주 보았지만 승률이 낮아 이기는 경우가 드물어 별로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침마다 일찍 등교하여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이 시골 축구부 학생들에게 희망이 있기를 간절히 마음속으로 기원하였다. 이들 구성원은 도시에 있는 학생들이 아니요, 그렇다고 뛰어난 축구소질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축구가 좋아 축구를 하는 이들이기에 부담 없이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었다. 이들에게 늘 희망의 그림자가 있다면 시합에서 이겨 강화고의 축구부를 전국에 알려보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고 해야 할까?
7월달로 접어들자, 강화고 정문에 어느 날 플래카드가 크게 붙여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양상민 국가대표 차출’이라는 글귀였다. 올해 56회 졸업생을 배출할 시점인데 52회 졸업생이 강화고의 축구부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다. 끈질긴 노력의 성취에 대한 기쁨이라는 것을 시골 학교 강화고 축구부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인식시켜 준 것이다. 작년에는 서울대에 4명이나 들어가 지방 신문을 떠들썩하게 한 것도 큰 성과였는데 올해는 축구부에 새로운 희망의 소식을 전해 주니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또 어디 있으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아침을 여는 동기가 되어
아침 일찍 축구부들의 운동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들에게 꼭 무엇인가 자극제가 될 동기가 일어나기를 바라던 끝에 나타난 것이라 보는 이도 기분 좋고 강화고 축구팀에게도 회생의 미소가 아닐 수 없었다. 누구의 지원도 미미하고 그렇다고 주변 환경도 좋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이들에게 항상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날들이 계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축구부뿐만 아니라 강화고 모든 학생들이 추구하는 길은 다를지라도 졸업한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과업을 이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새로운 희망이 새아침을 여는 동기가 되어 열심히 자신의 위치에서 노력하였으면 한다. 주어진 여건을 불평하거나 괴로워하기보다는 그 주어진 조건에 새로운 운명의 여로를 개척해 가는 이가 참된 삶을 살아가는 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