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야, 안녕? 먼저 이렇게 답장이 늦어진 것을 참 미안하게 생각하며 사과한다. 네 부모님께 안부 전화는 드렸지만 내가 먼저 편지를 쓰지 못한 것이 부끄럽구나.오랜 동안 집을 비우고 강진에 다녀오니 네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대견했단다.
글씨를 보니 매우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참 많아서 혼자 많이 행복했단다. 뭐든지 잘 하는 우리 반의 ‘한 박사’님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글씨 쓰기였는데, 깨끗한 종이에 일일이 줄을 긋고 반듯반듯하게 써서 보낸 너의 편지에 감동을 받았단다.
빨리 여름 방학이 끝나서 선생님과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다는 너의 마음처럼, 나도 어서 개학이 되어서 귀염둥이 우리 반 친구들과 즐겁게 살고 싶구나.
항상 부지런해서 심부름도 똑 부러지게 잘 하고 친구를 도와주는 일도 매우 좋아하며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다녀서 아는 것도 많은 1학년 박사님! 생각도 깊어서 말도 잘 하는 너를 보며 날마다 행복한 1학기였단다.
그 동안 바이올린도 열심히 배우고 있겠지? 좋은 책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오라고 욕심을 부린 선생님도 서효에게 지지 않으려고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으며 책도 많이 읽고 있단다.
요즈음은 제자들에게서 받는 편지가 참 귀한 세상이 되었단다. 컴퓨터로 보내는 편지가 흔해져서 이렇게 서효처럼 연필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고마운 생각까지 들지.
편지를 쓰느라 낑낑댔을 모습, 아마 여러 번 지우고 썼겠지? 봉투 쓰는 법도 배우고 우표를 붙이며 빨리 답장을 받고 싶어서 날마다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릴 너의 모습이 그려지는구나.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도록 가르친 훌륭하신 부모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다른 친구들도 선생님이나 친척 어른들께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다 한단다. 그러나 그런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많지 않지. 알면서도 안 하거나 못 하는 거란다.
선생님의 제자들도 군대에 간 제자는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내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전자우편)로 편지를 대신하지.
1학년짜리 서효의 편지는 이번 여름 방학에 받은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선물이란 그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겠니? 고학년도 아닌 1학년 어린이가 글씨를 또박또박 써서 편지를 보내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서효야, 나는 너의 편지를 곱게 잘 간직할 거야. 오랜 세월이 지나 서효가 어른이 되어서 나를 다시 찾아오는 그 날이 되면 꼭 보여주고 싶구나.
벌써 가을 준비하는 우리 분교의 정원에는 가을꽃들이 너를 맞이하려고 앞 다투어 피어나고 방학동안 자매결연으로 태어난 ‘햇살 도서실’의 책들이 개학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
2학기부터는 아침 일찍 ‘햇살 도서실’ 문을 열고 너희들이 배울 바이올린 음악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놓고 책으로 아침을 여는 학교를 운영할 생각이란다. 점심시간에도, 하교 후에도 언제든지 들어가서 예쁘게 꾸며진 도서실에서 우리 학교 모든 어린이들의 생각을 키워주는 독서활동을 위해 아침 일찍 문을 열어놓고 너희들을 기다릴 생각이다.
아름답고 좋은 도서실을 만들어준 고마운 분들의 뜻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선생님들과 그 뜻을 잘 알고 열심히 독서하는 착한 아이들, 뒤에서 늘 박수를 쳐주시는 좋으신 학부모님들이 함께 하는 연곡분교장은 세상에서 참 아름다운 학교라고 불러도 되겠지?
서효야! 항상 학교를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시는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려주렴.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친 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편지까지 쓰게 하신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꼭 말씀드리기 바란다.
그럼 튼튼한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늦은 답장을 참 미안하게 생각한다. 안녕! 2005년 8월 23일 아침 1 학년 짜리 한서효를 참 많이 사랑하는 선생님 씀
(편지가 사라져가는 교단의 모습을 깨우쳐 준 작은 꼬마에게 배웁니다.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는 것을! 며칠 남지 않은 방학 동안 군대에 간 제자에게도 편지를 보내 행복하게 해주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