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찾아, 물을 찾아 가족들과 아니면 연인들과 무리지어 오는 사람들. 때로는 학교에 들어와서 노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네들이 가고 난 다음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지성인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학교에 말도 안하고 저녁 늦게 까지 야영을 하고선 촛불 잔치의 흔적으로 온통 어질러 놓고 가는 경우도 있어 마음 상하게 한다. 자신의 쓰레기 하나도 감당 못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며 자연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휴가' 또는 '여행'의 의미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원시로 돌아가는 것, 소유로부터, 존재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탓에 나는 남들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엔 책 속으로 도피하는 일이 나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에 잠을 깨면 학교 앞 개울가에 나가 아침 나들이 나온 다슬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발을 담근다. 돌아와서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채소 밭에 나가 풀을 매 주고 상치를 다듬는다. 식탁은 풀잔치로 꾸미고 손 빨래를 하여 맑은 햇볕에 빨래가 마르는 걸 보며 바삭하게 부서지는 햇볕의 고마움을 느낀다.
방학 동안 심심한 우리 반 아이들이 놀러 오면 과학 실험을 하고 탁구를 친 다음 땀에 젖은 아이 들은 앞 개울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온다. 광주에서 사들고 온 옥수수를 쪄주고 수학 공부를 하며 책을 읽게 하고 나면 하루 해가 간다.
에어컨도 필요없을 만큼 시원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뒤로 하고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독서를 시작하는 나의 하루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곤 한다.
무디어진 내 영혼이 다시 깨어남을 느끼며 삼켜도 좋은 책을 만나면 며칠은 행복함에 빠진다. 오랜 고독을 이기고 저렇듯 울어대는 매미도, 뙤약볕아래 백일홍 붉은 잎술이 터지도록 붉어진 사연에도 여름은 어느새 가을 기운을 이기지 못한다.
나의 삶에도 이렇듯 빨리 가을이 오고 있음을 절감하며 뜨거운 태양과 그 아래에서 흘리는 땀의 의미를 되새김해보고 싶어진다. 저 뜨거운 젊음의 여름이 있어야 우리 삶에 풍성한 가을이 올수 있음을 묵언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예지가 내 안에 있기를 소원하곤 한다.
이번 여름엔 나폴레온 힐의 신념론 <당신이 운명의 열쇠를 쥐고 있다>를 읽으며 몇 번의 감탄사 를 토해냈다. 이 책 속엔 불변의 진실과 사람을 움직이는 목소리로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있었 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오랜 동안 곁에 두고 자주 눈맞춤을 해야할 지기를 만나서 참 행복하다.
피아골의 여름은 아름다운 자연과 책이 있어 중년의 여인을 소녀로 만들고 있다. 새롭게 다가서는 가을을 준비하며 꼬마 친구들이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