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독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꼬마 신사 한서효가 학교에 오는 날입니다. 여름 방학 동안 못 본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고 독도 이야기도 듣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화단가에서 서성이다 곱게 핀 다알리아꽃이 어린 날의 우리 집 꽃밭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작은 꽃밭에 가득 피어 있던 다알리아꽃과 백합꽃을 비롯해 화단가의 작은 돌들의 모습까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여덟 시를 넘기며 산골 아이들의 목소리가 교문을 너머 달려오기 시작하고 출근하는 트럭에 아랫마을 아이들을 잔뜩 싣고 오신 이주사님이 도착하니 학교는 떠들썩해집니다. 그 뒤로 피아골 아이들을 싣고 내려오신 자모회장님의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보태니 학교는 부자가 됐습니다.
달려오는 서효가 내 품에 와락 안깁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 "나도 보고 싶었어."
나는 이 꼬마 신사들을 만나는 재미로 날마다 나이가 어려지는 샘물을 마시고 삽니다. 등굣날 학교에 못 온 미안함을 갚으기라도 하신 듯, 서효 엄마는 울릉도 오징어를 품에 안기며 미안해 하십니다.
오늘은 학생회장 선거가 있는 날이라서 회장 후보인 하늘이의 복장이 영화배우 같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잘 생긴 외모로 텔레비전 방송에 나간 후 인기가 더 많아진 하늘이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우리 학교에 왔지만 지금은 올 때보다 훨씬 밝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쁜 아이입니다.
1학년부터 참석하는 전교학생회의에서 회장단과 각 부장을 선출할 때마다 박수소리가 작은 학교를 흔듭니다. 자치 활동을 철저히 하여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철저히 익혀주고 싶어서 자잘한 학교 행사나 일을 치를 때는 언제나 학생회를 통해서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곤 했습니다.
회의를 끝나는 시간에 맞춰 우체국 예금보험 그림 그리기 행사에 전교생이 응모했는데 1학년 서효 한 사람만 예선을 통과해서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누나들을 제치고 1학년이 상을 타서 의아해 하면서도 모두들 축하의 박수를 맘껏 쳐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쁩니다.
우리 어른들도 저렇게 사소한 일에도 다른 사람을 칭찬해 주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 계산을 앞세우는 사람, 진심을 몰라주고 딴지거는 사람들이 많은 어른들 속에서 나도 함께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우리 학교의 일꾼을 뽑은 즐거운 날을 자축하는 울릉도 오징어 파티를 했습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삼삼한 울릉도 오징어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학생회 임원 선거날. 우리 어른들도 나라를 이끌어갈 훌륭한 정치가를 선발하는 날이 이렇게 축제 분위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자가 내미는 겸손한 손과 패자의 아낌없는 축하의 악수를 보며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하며 나라의 일꾼들이 짊어질 짐에 지게를 받쳐 주는 축제의 날을 상상하며 이 아이들이 자라서 그런 세상을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있는 시간을 참 행복해 합니다. 이미 그들 스스로 사랑이기 때문이고 교육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사랑'이므로 우리 학교는 곧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싣고다니며 안전한 귀가 지도를 하는 교직원들, 이웃집 아이들까지 자기 차에 싣고 등교시키는 학부모님의 모습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극치는 아이들의 언어에서도 폴폴 새어 나옵니다. 주말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혼자서 실실 웃었습니다. 우리 꼬마 신사의 한 마디를 음미하면서요. 수학 시간에 오징어를 먹던 서효가,
" 아, 슬프다! " " 왜 그러니, 서효?" "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났는데 토요일이라 금방 집에 가야 하잖아요." " 월요일에 볼 텐데 뭘 그러니?" " 그래도요"
아! 이 감동!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더 크고 순수한 사랑을 가진 1학년 꼬마들의 통통 튀는 감성 언어를 내 짧은 필력으론 묘사할 수 없으니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고 늘 꺼내보고 싶습니다.
영화 '산책' 중에서 "사랑은 소풍과 같은 것이다. 소풍 가기 전날 설레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잠 못 이룬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랑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설레고 기분이 좋고 들떠서 잠 못 이루는 것과 같다." 던 대사처럼 1학년 꼬마들이 내뿜는 사랑의 언어들은 늘 나를 설레게 합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