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을인가 보다
멀리 떠난 제자들이 편지를 보내 오는 것을 보니...
6학년 졸업으로 내 곁을 떠나간 제자들이 편지를 보내는 계절은
스승의 날을 빼고 나면 언제나 초가을이었다.
그것도 남학생보다는 여학생들이 색깔도 고운 편지지에 여고생다운 필체로.
힘든 고등학생의 길을 가면서도 아직도 옛 선생님을 잊지 않고 보내는 편지를
받을 땐 그 날 하루내내 감동의 물결이 나를 감싸 안아 준다. 아직도 아이들에게 잊혀진 선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바쁜 중에도 마음을 나눌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제자들의 고운 마음씨에 또 감동하곤 한다.
고생스럽게 고집스럽게 글 쓰기를 강요한 내 욕심때문에 글 쓰기에 재능을 인정받아 교내 백일장을 주름잡는다는 편지를 받을 때는 내 가슴도 설렌다. 마치 내가 상을 탄 것처럼. 아이들에게 나는 늘 일방적인 약속을 하곤 했다. 먼 후일에 다시 만나는 날, 각자 자기의 자서전을 들고 만나자고...
'마음이 나누어주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로빈 세인트 존의 말은 한 치의 틀림도 없음을 실감한다. 아이들의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이 옹골차고 잘 여문 것일수록 싹트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기어이 파릇한 잎을 내고 겨울도 잘 이겨내는 걸 보게 된다.
제자들에게 답장을 쓰는 손끝이 가벼운 떨림으로 나를 감싼다. 가을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모든 사랑의 시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할테니, 나를 사랑하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사랑하며, 그 곳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이 가을이 내게 전하는 말씀이다.
이 순간을 사랑하는 일,
이 시간을 사랑하는 일,
내게 주어진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가을은 그러라고 나를 불러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