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도서실에서는 무슨 일이?
"연곡분교 어린이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필기도구를 가지고 햇살도서실로 모이세요. 오늘은 글쓰기 행사가 있답니다. 우리 모두 작가가 되어 봅시다."
"야, 신난다. 선생님 1학년도 글쓰기를 해야 해요?"
저학년도 같이 글쓰기 행사를 한다니 고학년 선배들이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9월 30일까지 '우체국 예금보험 글짓기'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데 행사 안내 우편물이 늦게 오는 바람에 포기하려다가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아서 평소에도 글쓰기를 잘 하여 상을 타 오곤 해서 포기하자니 뭔가 서운해서 도전하기로 했는데 1학년까지 다 데리고 할 마음을 먹으니 아침부터 마음이 바빴습니다.
다른 반 선생님들과 협의하여 3교시부터 도서실에 모여 놓고 글쓰기를 위한 문학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글을 쓰면 좋은 점, 좋은 글감 고르기, 글을 전개해 나가는 쉬운 방법을 비롯해서 진솔한 글쓰기 자세, 등등.
계발 활동을 할 때 오른 팔을 다친 하늘이도 같이 하겠다며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제 그림일기를 시작한 1학년 꼬마들은 낑낑대면서도 뭔가를 쓰느라고 언니들처럼 열심히 했답니다. '저축과 가족'이라는 주제 중에서 선택해서 쓰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 글에서 감동을 받을 만큼 진실하고 솔직한 체험을 생생하게 글을 쓰자고 했는데 잠시 후,
"선생님, 할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와요."하며 4학년 미영이가 나를 불렀습니다.
"그래, 미영아, 할머니를 향한 그 마음을 글로 쓰는 거야."
시간이 다급하니 아이들이 쓴 원고를 이메일로 받아서 교정을 하여 컴퓨터로 작업한 글을 보내려고 했는데 문의해 보니 원고지에 직접 쓴 글을 보내야 한다는 게 아닙니까? 이미 시간은 오후 3시가 가까워 오는데 요즈음의 작품 제출이 거의 컴퓨터로 작성한 문서라서 원고지 쓰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은 아이들은 무척 힘겨워 했습니다. 그래도 이럴 때 원고지 쓰기까지 가르치자는 마음으로 강행했답니다.
손이 아픈 하늘이는 컴퓨터로 원고를 써서 내 메일로 받은 다음 다른 학생이 원고지에 옮기는 수고를 하느라 퇴근 시간이 넘도록 끝내지 못한 원고를 접수처에 전화를 걸어서 담당자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직접 갖다 주어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오늘은 참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전교생이 도서실에 모여서 문학 수업을 한 것도 그렇고 원고지를 써 보며 띄어쓰기가 얼마나 힘든 지 실감했으니 앞으로는 읽기 책을 건성으로 읽지 않아야 하는 것도 배웠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만 먹으면, 서로 협동하면 더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리고 가족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 부모님의 소중함, 죄송했던 일, 멀리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되짚어보며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아이들의 모습. 더불어서 아이들은 글을 쓰는 일이 자기 정화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 좀더 진지하게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까지 보였습니다. 글쓰기가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하루였답니다.
오늘 밤에는 눈물을 훔치며 글샘의 밭이랑을 고르던 아름다운 아이들의 글씨들이 꿈 속에서 나타나 그들이 사랑하는 할머니, 아버지, 멀리 계신 엄마 품을 찾아 그리움의 날개를 파닥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