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었다. 출근을 하자 교무실 복도에서 한 학생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장애우인 익진이였다. 익진이는 나를 보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다가왔다. 오늘도 분명히 무언가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익진이는 전날에 좋은 일이 있으면 다음날 그것을 말해주기 위해 출근하는 나를 기다리곤 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익진이로부터 좋은 소식을 전해들은 그 날은 이상하리 만큼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어떤 때는 내심 익진이가 기다려주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익진이는 기다렸다는 듯 정확하지 않는 발음으로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언제부턴가 익진이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서론은 빼고 결론부터 말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애가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말을 하는데 불편함이 많은 익진이가 상대방을 위해 생각해낸 자기만의 화술(話術)인 것 같았다.
"선생님, 기뻐하세요. 제가 대학에 합격을 했어요." "정말이니? 축하한다. 고생했구나."
나는 축하의 말을 해주며 익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평소 이와 같은 포옹에 익숙하지 못한 듯 익진이는 연신 멋쩍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하여 고민을 많이 했던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진이는 포기하지 않고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아마도 그건 지금까지 결석이나 지각 한 번 없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익진이에게 있어 육체적인 고통은 다소 불편할 뿐 익진이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익진이가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해 온 이야기가 있다. 그건 사회복지사가 되어 자신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것이었다. 이제 익진이는 자신의 꿈인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앞으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 아이의 앞에는 현재보다 더 큰 난제가 남아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조금은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익진아, 대학생활 잘해 낼 수 있겠니? 선생님은 네가 걱정이 된단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익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오늘 익진이의 대학 합격의 기쁨은 일류대학에 합격한 그 이상의 환희였다.
사실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을 잘 할 수 없는 익진이에게 있어 대학은 멀고 먼 이상에 불과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인 사회복지학과에 당당하게 합격을 한 익진이가 오늘처럼 대견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가 아닐까.
지금 익진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위해 원서를 내놓은 상태이다. 수시 모집에 합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익진이는 시험을 치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학창시절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익진이에게는 시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점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친구들과 비교해서 자신도 해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