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면 습관처럼 구례에서 곡성으로 달리는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선택하곤 한다. 일주일 동안 못 본 코스모스 꽃길을 감상하기 위해서 두 시간 걸리는 퇴근 길을 온통 코스모스와 눈맞춤을 하며 저속으로 가는 퇴근 길.
어느 날 갑자기 찬 서리에 내려 앉을 가을 꽃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가족이 기다리는 주말을 한가로이, 배고픔까지 참고 집으로 가는 퇴근 길에 만나는 코스모스 꽃길은 상념에 젖게 한다.
'나도 누구에겐가 저렇듯 꽃길이 되어 준 적이 있었을까?, 꽃길까지는 못 되어도 한 송이 꽃이라도 되어 준 적이 있었을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처럼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살아 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코스모스 꽃길. 꽃들은 저렇게 할 일을 다 하고서도 그 자리에서 말없이 스러져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간을 아낀다며 밤잠도 설치며 세상에 미련이 많아서 자판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9월 보름의 달님이 깊어가는 산골 분교의 가을 밤을 지키는 나에게 친구하자며 조른다. 그래도 장가 간 제자가 안부 전화를 걸어와 적막을 깬다. 주례를 서 준 제자가 예쁜 아기를 낳아 벌써 세 살이라니 나도 행복한 밤이다.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애국자이니 어서 빨리 둘째를 가지라."라고 채근하는 옛 담임의 말에 두 말없이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난다. 제자들이 나를 보고 따라 올 수 있도록 요즈음 한창인 구절초나 개미취, 쑥부쟁이처럼 들국화 한 송이의 꽃향기라도 지닐 수 있기를 달님에게 부탁해 본다.
아이들에게 꽃길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