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작은 분교이지만 뒷산의 나무들을 비롯해서 큰 나무들이 교정을 꽉 채우고 있다. 학교의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오래된 큰 나무들이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해에도 큰바람에 넘어진 벚나무를 힘들게 보내야 했고 금년에도 도토리나무와 전나무가 죽어서 베어 내느라 장비까지 들여 와야 했다.
나무때문에 몇 달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자모회장님이 장비를 대여해 오셔서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은 날을 택해서 정리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큰 나무를 베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어서 특별히 신경을 썼었다.
밑둥을 드러낸 채 편히 쉬고 있는 나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나무에게도 그 나름의 삶이 있음을 인정해야 함을 생각한다. 수 십년 동안 학교를 지켜온 오랜 숙제를 마치고 자연의 품 속으로 돌아간 모습은 편해 보인다.
단풍은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떨어져서 비를 맞으면 한쪽에서 썩는다.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면 온통 쓰레기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는 것도 좋지만 까딱하면 학교 관리를 못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니 큰 빗자루를 들고 날마다 쓸지 않으면 스산해 보이기 쉽다.
지난 해 이 무렵에 겪은 일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문제는 대나무 잎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학교 뒤가 바로 산이다보니 낙엽을 태우는 일조차도 할 수 없다. 여름철에는 피서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를 치우느라 몸살을 하며 고생하시는 주사님이 가을에는 낙엽때문에 고생하시는 것이다. 쓰레기를 태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날마다 쌓이는 낙엽을 퇴비로 만드는 시설도 없으니 여간 난감해 하시면서도 일을 찾아서 하시는 분이라 너무 부지런하셔서 생긴 사고였다.
학생 수가 많았을 때는 몇 백명이었던 시설이 그대로 있고 전정해 줄 나무들도 많아서 사철 내내 수목 관리에 고생하시는 주사님의 일손이 참 바쁜 곳이다. 우리 주사님은 학교만 깨끗하게 하시는 게 아니라 학교 밖의 개울 주변까지 정리하실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분이라 일감을 놔두고 쉬는 법도 없고 시간도 고무줄처럼 쓰신다. 여름에는 시원할 때 일하신다며 일곱 시도 못 되어서 나오셔서 풀을 뽑으실만큼.
문제는 대나무였다. 동네 어귀에 여름철에 버리고 간 잡동사니를 떨어진 대나무 잎을 긁어모아 태운 불꽃이 언덕으로 튀어서 마른 잎사귀에 붙어 순간적으로 불이 붙은 것이었다. 대나무 줄기는 아무리 작아도 톡톡 튀면서 탄다는 특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혼자 불을 끄시려고 뒹글다가 화상까지 입은 상태에서도 목숨을 내놓고라도 불을 꺼야 한다며 달려드는 주사님을 말리는 데 더 힘들었던 지난 해 늦가을.
다행히 동네 분들이 함께 나서서 얼른 진화했지만 가장 큰 공은 역시 대나무 숲이었다. 다른 잡목 같으면 얼른 불이 붙었을 텐데 시퍼런 대나무는 불이 잘 붙지 않아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은 셈이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한 사람의 생명이 위급할 뻔 했고 산불로 번졌을지도 모르니 지금 생각하면 대나무 숲은 크나큰 은인이다.
그 대숲은 이제야 온전히 제 모습을 갖추어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도 열심히 사는 사람의 정성을 알고 큰 사고로 번지지 않게 해준 은혜를 베풀었으니 어찌 사람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으랴. 화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으시면서도 대나무 숲을 더 걱정하던 주사님의 마음이 통해서 였는지 새 잎을 내고 무럭무럭 잘 자라준 대나무들이 참 고맙다.
평생 단 한번만 꽃을 피운다는 대나무. 그것도 60~120년만에 단 한번 꽃을 피우고 즉시 생을 마감한다는 대나무의 곧은 절개와 한치의 흐트러짐도 허락하지 않고 꽃을 피우지 못 했으니 죽을 수도 없다며, 불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낸 대나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꽃을 피우기 전에는 죽을 수조차 없다는 숙연한 가르침, 제 할 일을 다 해야 한다는, 말없는 가르침을!
화재가 많이 나는 계절이다. 아껴서 기른 나무들이 한 순간의 실수로 죽음을 맞는 계절이다. 예쁜 낙엽을 보며 불조심을 생각한다. 엄청난 자연의 피해와 인명 사고, 재산 피해까지 몰고 오는 불조심을 생각해야 할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