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 녀석은 웬만해서 그 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가끔 아내와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해서 물으면 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하물며 어떤 때는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그 녀석으로부터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를 아예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녀석은 식사를 하면서 연실 싱글벙글 하였다. 조금은 들뜬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평소에 보기 힘든 녀석의 모습이었다. 녀석의 그런 행동이 우리 부부의 의구심을 더 자아내게 하였다. 잠시 뒤, 녀석은 묻지도 않았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빠, 아빠는 아빠가 가르치는 형, 누나들 이름 다 알아요?” “글쎄, 다 알 수는 없지. 그런데 왜 그러니?” “내가 잘 모르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어요.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모르는 선생님이 단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사실 하나에 막내 녀석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녀석이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학교에서 나는 어떠한가. 이름을 잘 모르는 아이를 부를 때 나의 호칭은 늘 “야”라는 반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당시의 아이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사실 선생님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운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관심만 있다면 못 외울 것도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름을 몰랐을 때 학생들을 부르는 호칭이 문제라고 본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복에 이름표를 달고 다닌다. 이름표는 멋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선생님은 어떤 아이의 이름이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에는 학생의 이름표를 보려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먼 훗날 학생들이 졸업을 하여 우연히 만났을 때 그 학생들의 이름을 모른다고 “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이들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 줄 필요가 있다. 자칫 잘못하여 이름을 잘못 불러주어 잘못 불러 준 그 이름이 별명이 되어 다른 아이들로부터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
선생님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민감한 요즘 아이들이다. 그 행동 하나에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고민을 한다. 오늘 잘 모르는 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좋아하는 막내 녀석을 보면서 좋은 교훈을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교 생활을 하면서 몰랐던 중요한 사실하나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