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우연히 초등학교 고학년인 막내 녀석의 방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녀석은 피곤한 탓인지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월요일 주간학습계획표를 확인하던 중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일기장을 확인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녀석은 금요일 일기를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둔 것이 아닌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공부밖에 한 것이 없다.”
그리고 일기 맨 끝에는 담임선생님이 일기장을 검사하고 난 뒤 느낀 소감을 간략하게 적어 두었다.
“쓸 내용이 없으면 공부한 내용이라도 적어 보렴.”
일기를 읽고 난 뒤, 세상 모르고 자고있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지금까지 공부만 하라고 강요한 탓일까. 주말과 휴일이 되면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부부가 녀석과 약속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일체 노는 것 금지’ 단 ‘토요일과 일요일은 마음대로 놀기’
녀석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다 보니 일기장에는 뚜렷이 무엇을 쓸 내용이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 녀석의 일기장을 보고 난 뒤, 무언가 느낀 점이 있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일기(日記)의 사전적 의미는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감상 등을 적은 개인의 기록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는 실정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 및 학원 숙제로 밤늦게까지 씨름해야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하루 중 있었던 일을 적으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공부한 내용뿐일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일기장에 있는 오늘의 반성 내용에 ‘공부를 열심히 않았다’라고 적을까봐 걱정이 된다. 아이들이 오늘 한 일에 대해 느낀 바를 적고 반성할 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공부만 강조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눔으로써 부모와 아이와의 벽을 허물어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