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을 숲길이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날 이런 글을 한 편 남겼습니다.
「가을 숲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없을 겁니다. 그저 단풍이 곱게 물들거나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면 더 낭만적일 거라는 작은 바람만 있을 겁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들은 단풍이 졌어도, 떨어진 낙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도,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어도 가을 숲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숲길이 사람을 부른 게 아니라 숲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왔다는 것을 압니다.
가을 숲길에는 걱정이 없습니다. 단풍잎을 더 곱게 물들이는 밝은 미소가 있습니다.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을 춤추게 하는 낭랑한 웃음소리가 있습니다. 가슴 저편에서 밀려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해 마냥 즐거워하는 몸짓이 있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세상이 보입니다. 욕심을 훌훌 벗어던진 낙엽들이 가을숲길을 더 아름답게 합니다. 그러면서 숲길은 세월이 변하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사계절 중 어느 하나라도 건너뛸 수 없듯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나는 계획적으로 조성한 숲길보다 우리나라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잡목들이 아무렇게나 심어져 있는 숲길을 좋아합니다. 색깔이 곱지 않더라도 나뭇가지에 단풍잎이 몇 개 매달려 있고, 색 바랜 낙엽이 길에 쌓여 있는 숲길이라야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가을 숲길이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고마움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을 숲길을 찾아오는 것이 더 소중할 겁니다. 소박한 일상을 벗어나 잠깐 누린 여유였더라도 고운 단풍잎을 가슴에 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가을 숲길만 다녀와도 가슴에서 빨간 단풍잎이 뚝뚝 떨어지고, 그렇게 아름다운 단풍잎 사랑을 이웃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지요. 고운 단풍잎을 벗어내며 속살을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고, 바람 한 점에도 우수수 낙엽을 쏟아내며 슬픈 작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가을 숲길이 욕심을 버리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한 폭의 수채화보다 더 아름다운 어울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가을 숲길은 행복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산하는 어느 곳이건 단풍 물결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 유명한 산이나 숲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학교의 운동장이나 정원에는 아이들의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느라 여름내 운동장을 지키던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이 예쁘게 물들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게 있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나무 밑에 낙엽이 없다는 것이지요. 나무가 많은 운동장에 가을이 없다는 것이지요.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고서야 느껴지는 것도 있습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데서 공을 차본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매일 주워 운동장이 깨끗하면 무엇 합니까? 아이들의 낭만을 줍고 있는데... 매일 쓸어 운동장이 깨끗하면 무엇 합니까? 아이들의 추억을 쓸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낭만과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합니다. 낙엽이 굴러다니고, 나무 밑에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운동장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사나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