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진우가 아파서 학교에 안 왔어요."
환절기라서 아이들이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진우가 결석이다. 말수가 적고 꼼꼼한 모습도 그렇고 숙제며 준비물 하나까지 잘 챙기면서도 친구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나 대신 지적하는 모양새가 꼭 조선 시대의 꼬장꼬장한 선비를 연상케 하는 우리 진우,
때로는 그 깔끔함이 지나쳐 까탈스럽게 보여서 부드러워지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듣는 아이이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법으로 통하는 진우에게는 농담조차 통하지 않는다. 뭐든 진담이고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다섯 중에 한 아이가 오지 않으니 그렇지 않아도 썰렁한 아침 기운에 나까지 아프려고 했다. 친구가 오지 않은 빈자리를 메워 주려고 따스한 햇볕에 나가 가을 낙엽을 주워 가을 풍경을 만들기로 했다. 노오란 은행잎을 잔뜩 달고 서 있는 은행나무를 살짝 건드리면 흩날리는 모습이 여간 아름다웠다. 고운 단풍잎을 바구니에 담으며 곱게 핀 과꽃과 다알리아 이름을 몇 번이나 묻는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나도 들떴다.
"에구, 오늘은 진우가 학교에 안 와서 선생님도 아플 것 같아."
했더니 눈치 빠른 2학년 나라가 나를 위한다며 칸막이용 하얀 칠판의 더러워진 부분을 자기 지우개로 깨끗이 닦았다.
"우와, 아주 깨끗하게 닦였네! "
내가 환호를 하며 좋아하자 다시 나라가 한마디 했다.
"선생님, 다음 스승의 날에도 이렇게 깨끗이 만들어 드릴게요."
"어?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가야 하는데? 어쩌지?"
"에이, 안 돼요"하며 네 명이 합창을 한다.
"얘들아, 내년에는 더 젊으시고 예쁜 선생님들이 오신단다. 나는 늙었잖아."
"선생님은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
아! 이 아이들이 또 나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집보다 더 정이 든 분교, 영원히 살 것처럼 다듬고 가꾼 3년의 시간이 창밖에서 달랑거리며 겨우 매달려 있는 단풍잎만큼 남은 시간 앞에 아쉬움을 삼키며 이 가을을 보내고 있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아이들이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그럼, 서효가 선생님 볼에 뽀뽀해 주면 안 갈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나라가, "진짜예요? 1학년 동생들아, 우리 단체로 뽀뽀하자" 하며 우르르 달려든다. 아이고 어쩌자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뱉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모든 게 진담이란 걸 또 깜빡 잊은 내 탓이었다. 고학년에게는 농담도 곧잘 통하던 습관이 또 나오고 말았으니.
그렇잖아도 성추행이나 성폭행으로 민감한 시기에 뽀뽀라니...꼬마들의 진심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저 단풍보다 더 붉어졌다. 흰머리 하나라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날마다 뽑아낸 앞머리 덕분에 갈수록 훤해지는 앞이마의 비밀을 아이들이 알까? 흰머리가 안 보이니 자기들 선생님이 늙지 않았다고 하는 걸까?
하교하기 전에 진우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빨리 나아서 학교에 오라고. 보고 싶다고. 색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옹알옹알 뭐라고 썼을까? 별 스티커를 붙이고 꾸미고 비밀스런 편지가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제일 멋없는 건 내가 쓴 흰 봉투의 편지이다. 꽃다발 대신에 화단에 핀 과꽃 한 송이, 국화 한 송이, 메리골드 두 송이를 묶어 주며 편지랑 함께 한 동네 은혜에게 진우 병문안을 반 대표로 보내기로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아이들이, "나도 아플래요. 편지랑 꽃다발 받게요."하는 게 아닌가? 문득 내가 어렸을 때는 귀한 사과를 먹고 싶어서 가짜로 아픈 척 하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명절이 아닌 때에 귀한 사과를 먹는 일은 아플 때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색종이 편지와 꽃 세 송이에 이렇게 감동하는 아이들이 참 예뻤다. 순간 나도 아이들처럼 단순해지고 싶었다. 아니 이렇게 깨끗한 아이들 곁에 있으니 조금은 깨끗해지지 않을까?
"진우야, 내일은 꼭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