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이 그런 대로 무난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시험 도중에 소지한 휴대폰이나 MP3 때문에 부득이하게 처벌을 받아야 하는 수험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시험 시간에 소지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수험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규정은 아닌가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능이 끝나고 며칠 뒤에 도에서 주관하는 모의평가를 치르게 되었다. 대상은 고 1,2학년이었다. 규정상 사설 모의고사를 치르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일 년에 몇 번 보는 모의평가는 학생 본인의 수능 관련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교실로 올라가 시험 준비를 하게 했다.
“너희들 소지하고 있는 물건들 있으면 가방에 모두 넣고 혹시 잊고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전자 제품 없는지 꼭 살펴봐라.”
아이들은 부산하게 손전화(휴대폰)나 MP3를 거두게 되었다.
“정말 짜증난다. 손전화나 MP3가 커닝의 도구도 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야단법석을 떠는지 모르겠어.”
한 아이의 항변하는 듯 한 말투가 마치 나를 향하고 있는 듯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 TV도 안 보나. 멋도 모르고 가져간 아버지 손전화 때문에 합격이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도 좋지 않겠니.”
화가 났지만 아이에게 최근에 수능과 관련되어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야기 해 주게 되었다. 아이는 나의 말에 납득은 하면서도 여전히 불만스러운지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더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선생님, 커닝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휴대폰이나 MP3만 거두어 가는지 모르겠네요.” “너도 작년에 TV를 통해 접하지 않았니. 전자기기를 통해 상호 연락망을 취하면서 서로가 답을 건네주고 건네받다가 처벌을 받아잖아.”
“선생님 그건 극히 일부이지. 저희들이야 어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오늘 부모님하고 꼭 통화해야 되는데. 휴대폰을 압수해 가버리니 통화도 하지 못하고, 속상해요. 그리고 말이 났으니 말이지 커닝을 전자기기로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려면 자기가 입은 옷에도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옷도 벗겨 가야 되겠네요. 차라리 속옷만 입고 시험 치는 것이 낫겠네요.” “옷에도 답안을 적어 놓는단 말이야. 그거 참 대단하네.”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커닝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뭘 못하겠어요. 더한 것도 하죠.” “그래 너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참 오늘 전화 할 때가 있으면 교무실로 와라. 선생님이 손전화 빌려 줄 테니까.” “알았어요. 선생님, 꼭 좀 빌려 주세요.”
아이는 그제 서야 화가 풀린 듯 나와의 논쟁 아닌 논쟁을 그치게 되었다. 아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커닝을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엔들 못하겠는가. 심지어 옷에도 답안을 작성할 수도 있다는 아이의 말이 한편으론 극단적인 의미겠지만, 하려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갈수록 지능화 되어가는 커닝 사태를 단지 전자기기만을 압수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한편 지나친 시험 감독이 자칫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말처럼 차라리 ‘속옷만 입고 시험 치는 낫겠다는’ 극단적이 표현이 자칫 중요한 시험에 임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심적인 부담감과 아울러 아이들의 소중한 인권까지 침해할 수도 있으리라는 두려움을 던져준다.
“커닝을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더 극단적인 경우도 발생하지 않겠어요.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험인데, 그 긴장감과 초초함이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잖아요. 더군다나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아이들에게 시험 감독이라는 명목으로 더 강압적으로 규제하려 든다면 자칫 커닝 사태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일점 이점에 목숨까지 버리는 아이들도 허다한데….”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툭 하고 던지시는 말에 일순간 소름이 쫙 끼치는 느낌이었다.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되고 긴장된 아이들에게 시험 중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커닝을 하지 못하도록 감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아가 더 소중한 부분은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