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조회시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교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험기간이기 때문인지 교실이 다른때보다 조용한 분위기다. 그런데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가만히 보니 두군데에 나뉘어서 옹기종기 모여서 책을 보고 있다. 그 두군데는 두말할 필요없이 온풍기가 놓여있는 곳이다.
우리반의 P, '선생님? 추워서 시험 못보겠어요. 교실좀 따뜻하게 해줄수 없나요.' 옆에있던 L, '손이 굳어서 글씨가 잘 안써질것 같아요. 교실이 왜 이렇게 춥나요' 그러자 반대쪽에 무리에 섞여있던 여학생인 H, '선생님? 우리 돈 거두어서 난방비 내요. 그러면 더 따뜻해질 것 아니예요.'
'아직 난방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지 않아서 그렇다. 아침이고 날씨가 너무 추운탓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따뜻해 질 것이다. 참는 것도 공부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돈 때문에 난방이 제대로 안된다는 것을 학생들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학교의 난방사정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조개탄 난로놓고 난로당번 정해서 수업끝나면 난로청소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온풍기로 난방을 하니 그래도 사정이 좋아진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의 난방사정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가정의 사정도 마찬가지로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가정이 거의 없는 것만 봐도 쉽게 알수 있다.
그런데, 교실의 난방은 개선되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있다. 바로 환경이다. 창문이 잘 맞지 않아서 소위 '황소바람'이 이틈 저틈에서 몰려 들어온다. 문을 꽉 닫을라치면 양쪽으로 잘 움직이지도 않고 이중창으로 되어 있지만 창문 두개를 모두 닫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하나, 그렇더라도 난방을 좀더 강하게 하면 어느정도 해결이 될 수 있지만 학교의 사정이 어디 그런가. 난방시설이 잘 안된 것은 물론 그 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가 말이다. 학교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실장들은 어떻게든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노력한다. 정해진 예산으로 마음껏 난방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늘 퇴근길에 이런것을 보았다. 분명 신호등이 있는데, 그 옆에다 거의 똑같은 신호등을 다시 설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존의 신호등이 고장난 것도 아니고 위치를 많이 바꾸는 것도 아닌데, 새로운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도로공사를 조금 하면서 신호등을 바꾸는 것이었다.
내심 이런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넉넉치 못한 학교예산으로 인해 춥다고 하는데, 이런곳에 예산을 쓸데없이 사용하는구나. 이런 돈으로 학교교육에 더 투자할 수는 없는 것인지..'
학생들을 생각하고 신호등을 생각하니 왠지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교육재정확보를 우리 한국교총에서 요구하는 뜻을 100% 이해하고도 남은 하루였다. 학생들 말대로 '빵빵한 난방'가동은 언제나 가능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