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곡분교 전교생은 점심을 마치고 바이올린을 가지고 1학년 교실로 모이세요."
유치원 선생님의 안내 멘트에 전교생이 술렁입니다.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들고 모이는 일이라면 뭔가 행사가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17일에 유치원 어린이 8명을 위한 생일잔치 계획이 있다는 유치원 임명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가 있어서 제안을 했습니다. 그날 전교생이 초대받아 축하 행사를 해주곤 했으니까 이번에는 행사를 좀 키워서 '작은 음악회를 열자고 말입니다. 가을 대운동회를 하는 바람에 이번 학년말에는 학예회가 취소되었습니다. 작은 학교에서 두 가지 큰 행사를 함께 치르면 아이들에게 미치는 수업결손을 염려해서 입니다.
그런데 우리 분교 아이들은 평소에 꾸준하게 연습해 온 프로그램이 여러 개 있어서 학예회를 하지 않으려니 아이들이 무척 서운해 합니다. 2년 동안 배운 바이올린 실력, 3년 동안 계속해 온 핸드벨 연주, 사물놀이를 추가하고 운동회 때 선보인 전교생 에어로빅을 추가하면 근사한 학예회를 꾸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들과 상의하여 '유치원 생일 잔치와 작은 음악회' 이야기를 꺼냈더니 찬성하시는 선생님들. 모름지기 학교란 즐거워야 함을 생각하고 배운 바를 드러내 놓고 열심히 뒷바라지해 오신 학부모님을 한 자리에 초대하여 생일을 축하하는 음악회와 장기자랑 프로그램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즐겁습니다.
부랴부랴 안내장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짜며 행복해 하는 선생님들, 자기 학급 장기자랑 준비를 하며 마냥 즐거운 아이들, 전체가 함께 모여 다시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행복한 순간을 제가 그냥 넘길 리가 없습니다. 연습 중인 한 장면을 얼른 찍어서 오늘의 학교일기를 마쳐야 퇴근 길이 즐거우니까요.
봄부터 늦가을까지 바쁜 일상때문에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학교에 나와서 볼 기회가 없는 학부모님들도 무척 좋아하십니다. 교육을 이끌어 가는 선생님(학교)과 학부모, 아이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벌써부터 그려져서 안내장을 만드는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어느 때보다 빨리 춤을 춥니다.
겨울방학을 하면 아이들이 재미없다며 시큰둥 한데 며칠 동안은 또 즐겁게 학교에 올 일이 생겨서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하나도 춥지 않은 아이들. 동생들 선물을 만든다며 색종이를 오리고 꽃을 만드는 우리 반 아이들의 손놀림도 신이 났습니다. 동생들 몰래 만들어야 한다고 , 비밀이라고 약속하지만 지킬 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