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교직에 들어선지 15년째를 맞고 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강산이 한번 변하고 또 한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지나온 과정을 떠올리니 새삼 얼굴이 붉어진다. 교직에 첫발을 내딛은 햇병아리 교사 시절은 그야말로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나갔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을 마주한다는 것이 보통 겁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새벽까지 교과서를 분석하고 교안을 작성하는 날이 허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많은 것이 변했지만 교수법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들이야 어떻든 나만의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몇 차례 연구수업을 통하여 수업 개선을 시도해본 적은 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 동료교사들로부터 칭찬을 듣기에 바빴지 몸에 약이 되는 따끔한 조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1시간의 수업을 위해 몇 주일 심지어 한달 넘게 준비한 수업은 누가 봐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한 직장에서 평생을 함께 지내야 할 동료들 간에 서로 좋은 게 좋다고 덕담을 해주는 관행도 한 몫을 했다. 그러니 연구수업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수업의 질적 개선을 도모한다는 것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다.
교사의 보람은 뭐니뭐니해도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해가 갈수록 과거의 형태를 답습하고 있는 수업에 대한 자괴감과 함께 아무런 발전이 없는 정체된 생활로 인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진 절망의 늪은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들었다.
변화의 시작은 배움으로부터
가르침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마냥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날, 마음 한 켠에서 공부를 다시 한번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의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배움이 부족해서 이런 고민도 생긴 것 같았다. 특히 내가 대학에 다녔던 1980년대는 시국이 몹시 어수선했었기에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대학졸업장만 딴 것 같아서 마음속에 큰 빚이라도 남아있는 듯 개운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번 마음먹기까지가 어렵지 일단 결정을 내리면 반드시 실천에 옮기고야 마는 성격 때문에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 입시 준비를 시작했고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매 순간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매 학기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교학과 직원들이 강의평가서를 들고 와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면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 학기 동안 진행된 해당 과목의 수업에 대하여 학생들의 반응을 면밀히 조사한 후, 다음 학기 수업 계획의 참고자료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교수에게도 결과를 통보하여 수업의 질을 높이는데 활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대학원 강의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은 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사람이 더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우는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인식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제서야 교직에 대한 회의감이 스스로 문을 꽁꽁 잠가둔 채 변화를 두려워했던 심리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학생을 수업의 반려자로
교사로서 중년으로 접어들 시점에서 찾아온 정체성에 대한 위기는 대학원 공부를 통하여 말끔히 해소되었다. 삼년에 걸쳐 새로운 충전을 마치고 이제 심기일전의 자세로 아이들 지도에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변화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수업이었다. 교사가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원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강의평가제를 내 수업에 도입(2003년도)하기로 결심했다.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적어도 스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제자가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다. 특히 팀워크를 중시하는 교직사회에서 동료교사들에게 괜한 부담을 안겨줄 개연성도 있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의평가를 수업개선의 참고자료로만 삼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대학원에서 경험했던 설문조사 방식을 활용하기로 했다.
수업평가는 매 학기 마지막 시간을 이용하였다. 수업의 질적 수준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개선점을 찾기 위하여 객관식과 주관식 문항을 적절히 활용하여 설문지를 작성했다. 출발이 어려웠지 일단 시작을 하고보니 내가 몰랐던 아니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까지도 아이들은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가령 수업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적절한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거나 별도의 보조 자료를 활용한 경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으나, 무조건 점수로만 평가한다든지 적절한 비유나 예시가 부족해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등의 단점을 지적할 때는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 학기 수업준비는, 설문조사에 나타난 결과를 토대로 하여 아이들이 장점이라고 지적했던 내용은 그대로 두고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제기된 부분을 보완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애써 설문조사에 응한 학생들의 성의를 생각했을 때, 다소 부끄러운 내용이 있더라도 교사로서 책임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 결과를 학교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교사의 보람은 수업을 통하여
수업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똑 같은 내용이라도 접근 방식이나 교수법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도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기호를 모니터링 하듯, 수업을 생명으로 하는 교사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자기 수업이 최고라고 여기는 자부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요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업이야말로 모든 교사가 소망하는 목표라 할 수 있다. 뭔가 준비가 부족했고 학생들의 반응도 시큰둥했던 수업은 항상 개운치 않은 뒷맛으로 남아 마음을 짓누르기 마련이다. 정말 50분 수업이 물 흐르듯 의도했던 대로 마치고 교실문을 나설 때의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만족스런 수업을 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수업평가제를 생각했고 지금은 수업의 질적 개선에 가장 유용한 방법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