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밣혀졌다. 당연히 논문도 조작됐다. 당초 논문 조작 의혹이 일었을 때만 해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던 황교수가 아니었던가. 이런 황교수를 믿고 난자 기증서약까지 하면서 연구에 힘을 보태겠다던 수많은 여성들과 특히 황교수팀의 연구에 모든 기대를 걸었던 난치병 환자들의 절망은 어떻게 또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아무리 가시적인 연구 성과가 급했더라도 학자에게 있어 진실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다. 논문은 연구 결과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객관적 절차로서 조금의 거짓도 없어야 하기에 학자의 인격이나 다름없다.
당초 'pd수첩'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시청률에 집착한 또하나의 방송사고쯤으로 일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낙후된 과학한국의 위상을 일거에 격상시킨 것은 물론이고 임상단계를 거쳐 실용화될 경우 한국을 먹여 살릴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더해졌으니 말이다.
단일 프로젝트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순항하던 황우석 연구팀이 암초에 걸려 난파하기를 학수고대했던 외국 과학계가 부를 쾌재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연구성과라고 내놓은 논문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했으니 이것이 국치(國恥)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갈수록 드러나는 과학자들의 위선적 언행에 분노한 민심을 감안이라도 한 듯, 급기야 검찰이 나서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오늘부터 핵심 인물을 줄줄이 소환한다.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로 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배아 줄기세포의 실체도 가시적으로 드러난 이상 그에 합당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외국에서는 과학자의 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날 경우 해당 논문의 취소는 물론이고 학위까지 박탈함으로써 과학계에서 영원히 추방할 만큼 중대한 범죄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 조작은 과학계의 철학 부재와 열악한 실험 환경 그리고 성과주의에 집착한 소영웅주의 문화가 빚어낸 산물이기에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공범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 황우석 교수의 처리와 관련하여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장왕의 일화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장왕이 어느날 밤 신하들을 모아놓고 주연을 베풀었다. 바로 그때 등불이 꺼지더니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가 그녀의 가슴을 더듬고 희롱한 것이다. 그녀가 쥐고 있는 갓끈의 임자만 밝혀내면 극형에 처해질 범인이 드러나겠지만 왕은 없었던 일로 마무리했다. 몇 년 후 진나라와 국운을 건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목숨을 걸고 싸우는 한 장수가 있어 불리한 전세를 뒤집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장수는 다름 아닌 주연에서 임금의 애첩에게 갓끈을 빼앗긴 그 신하였다.
비록 사이언스에 게재된 줄기세포 관련 논문이 조작됐다는 결론이 나오긴 했으나 황우석 교수는 침체에 빠진 한국 과학계에 의욕을 불어넣고 그 어떤 교육정책으로도 풀지 못했던 이공계 및 기초과학 기피 현상의 해소는 물론이고, '과학열풍'을 불러 일으켜 이 분야로 젊은 인재들이 몰려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이 깊을수록 실연의 아픔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마음같아서는 황교수를 당장 내치고 싶겠지만 이는 국익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황교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번 파문으로 인해 그간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세간의 이목과 관심에서 벗어나 부담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왕의 부름을 받은 장수는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나 폐하의 온정으로 살아날 수 있었으니 목숨을 바쳐 그 은혜에 보답하려 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애첩을 희롱한 신하를 중벌에 처하지 않고 덕으로써 감싼 장왕의 지혜로운 판단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듯이, 인재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새로이 탄생하는 법이다. 당장은 황교수가 밉더라도 백의종군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