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기간에도 항상 아이들과 학급 홈페이지를 통하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지만 방학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쯤 편지를 보내기에 적당한 시기인 듯하여 오늘은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은 전문상담연수를 받느라고 편지를 쓸 엄두도 못 내었는데 눈 치료를 위하여 겨울 계절학기 전문상담연수를 못 받게 되어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개학 후에 아이들의 일기장을 보면 간혹 방학동안에 선생님이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염려하는 글이 적혀 있다. 그래서 그 글을 읽은 후부터는 교사가 방학 중에 아이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서라도 편지를 써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이 생겼다.
CD로 학급문집을 만들기 위하여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띄워 놓고 아이들이 마치 앞에 있어 대화하듯이 쓰니 왜 그렇게 쓸 말이 많은 지. 편지를 먼저 쓰기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항상 아이들이 먼저 편지를 보내오면 답장을 하곤 했는데 교사가 먼저 써서 보내고 아이들에게서 오는 답장을 받아보면 다소 글짓기 능력이 부족한 아이라고 하더라도 교사가 편지에 적어 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비교적 긴 글의 내용을 적는 것을 더러 본다.
오늘 아이들에게 쓴 편지는 기존의 편지지 형태가 아닌 새로운 아이텀의 카드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 보내는 카드처럼 생겼는데 일년 내내 편지지 대신 쓸 수 있도록 만든 예쁜 카드로 작년 10월 서울국제문구전시회에 선보인 카드였다. 그 때 오늘의 행사를 위하여 담당자에게 부탁하여 20여개 받아 두었던 것을 사용하였다.
18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번호대로 편지를 쓰지 않고 생각이 나는 어린이들부터 쓰기 시작하였다. 먼저 생각이 나는 어린이들은 내성적인 성격의 어린이들로 교사와 그다지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던 아이들, 가정형편이 어려워 내내 마음이 쓰였던 아이들, 친구가 많이 없어서 혼자 빙글빙글 돌던 아이들이었고 다음으로는 너무나 활발하다 못해 복도를 뛰어다니고 큰소리로 떠들며 친구들을 놀리거나 다투어서 지적을 많이 받던 어린이들, 끝으로 인기가 많아서 친구들이 많거나 혹은 온순, 착실하여 묵묵히 앉아 자기의 일을 하던 소위 모범생부류였다.
18명의 어린이와 생활하면서 교사로서 느꼈던 것, 또 앞으로 바라는 사항, 학교, 학급 행사에 다방면으로 참여하며 열심히 생활한 어린이들에 대한 칭찬, 급우관계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스스로의 반성을 꾀하도록 하는 내용, 또는 남다른 특기가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독려, 불우한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잃지 말라는 내용, 특별히 선생님과 추억을 간직한 어린이들의 일들을 적다가 보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났다.
그런데 오늘 꼭 잊지 말고 보내어야 하는 답장이 있다. 2월 말 전임 지 학교를 떠날 즈음 편지를 보내온 전 학년도 담임을 한 2학년 어린이 세 명에 대한 편지다. 학교를 옮기고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편지를 쓸 여유가 없던 터여서 답장을 못한 채 언젠가는 답장을 하리라고 마음먹고 잘 간직해 두었던 소중한 편지들에 대한 답장이다.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 가시더라도 절대로 자기를 잊어버리지 말고 우리 2학년 4반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내용을 구구절절이 쓴 태영이 글에 대한 답장, 대형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는 배가 아파서 배를 움켜잡고 어쩔 줄 모르며 우는 바람에 직장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자주 드려야 했고 부모님께서는 급하게 뛰어오시기를 여러 번 했던 주원이가 선생님이 자기가 아플 때 땀을 흘리시면서 걱정을 많이 해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의 글에 대한 답장, 또 방학 중에 편지가 와서 답장을 보내었는데 못 받았다고 하며 주소를 다시 또박또박 적어 주면서 답장을 다시 해달라고 한 채린이에 대한 답장이 그것이다.
또 우리 반 이주현 어린이의 2학년 동생으로 부모님께서 직장에 나가시는데 토요휴업일에 주현이가 모범 조에 뽑혀서 선생님과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문구전시회에 갈 때 혼자 집에 남게 되어 함께 데리고 갔는데 선생님이 구경시켜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바로 그 날 행사장의 한 편지쓰기코너에서 오늘 아이들에게 보내는 이 카드에 써서 학교로 보내어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예은이에게도 오빠와 함께 편지를 받아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따로 우표를 붙여 보내었다.
카드 하나하나를 우체통에 넣으면서 방학에도 이처럼 교사에게 보람과 기쁨을 선물하는 아이들이 한없이 고맙게 생각되어 남모르는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