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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전 선생님의 보배입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늘 마음 깊은 곳에 감춰뒀던 뜨거운 열정을 꺼내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도 낯선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을 새내기들이라면. 수업도 들어가기 전에 ‘녀석들은 어떤 모습일까’ ‘행여나 말썽꾸러기들은 아닐까’ ‘공부에 대한 관심은 있는지’ 등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문다. 드디어 첫 수업이 다가왔다. 기대를 한껏 품고 교실에 들어서자 깨끗한 차림으로 반기는 서른다섯쌍의 보석 같은 눈동자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 짧게 깎은 머리, 굳게 다문 입술….

첫 대면의 느낌은 무난했으나 이제부터 저들끼리 펼칠 치열한 경쟁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특히 내신성적이 상대평가로 바뀌고부터는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성적에 있었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평가기준과 원칙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 같은 반 수업이 돌아왔다. 수업에 앞서 어제 내준 과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목하는 순서대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다 한 아이가 주제에서 벗어난 답변을 했다. 이미 첫 시간에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한 만큼 감점 항목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수첩에 체크했다. 아이도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수업이 배고픈 하마처럼 줄줄이 입을 벌리고 있던 터라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은 금세 잊고 말았다.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창밖으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귀가를 서둘렀다.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낮에 미뤄둔 업무를 마무리짓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버릇처럼 편지함을 살펴보자, 낯선 편지 한 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2교시에 지적받았던 전보배입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당시 상황에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신 것처럼 저는 발표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주제에서 빗나갔을 따름입니다. 점수가 깎이는 것은 감수할 수 있지만 행여나 선생님이 저를 불성실한 학생으로 오해하실까 걱정됩니다. 선생님, 저는 절대 그런 학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선생님의 수업을 더 잘 듣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보배 같은 제자가 되고픈 보배 올림-”

바로 오전에 엉뚱한 답변으로 감점을 당했던 보배의 편지였다. 상심이 컸던 모양이다. 답장을 미룰 필요가 없었다.

“그랬구나! 보배의 얘기를 듣고보니 선생님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네. 보배가 이해하기 쉽도록 좀더 세심하게 설명해줬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보배 같은 제자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듣고 선생님은 세상의 보배를 다 얻은 것 같구나. 오늘 지적받아서 감점받은 일은 없었던 걸로 할게. 마음 편히 먹고 행복한 꿈꾸길 -보배 같은 제자를 얻은 국어선생님으로부터-”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교실로 가는 복도에서 보배를 만났다. 이심전심으로 오가는 눈짓속에 녀석의 예쁜 미소가 햇살에 닿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막 고교생활의 첫 단추를 꿰기 시작한 새내기 보배.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해를 구하는 모습에서 그의 보배 같은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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