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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떠난 뒤에 그리움을 남기는 사람


''지난밤 꿈속에 나타난 선생님께 전화하지 않으면 평생 뵐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혹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여느 때보다도 하루 종일 선생님 생각이 떠나질 않아 폰을 들었는데 여전히 우리 선생님은 예전 그모습 그대로라는 걸 느끼고 기뻤습니다.
무얼 어떻게 말씀 드려야할지 글을 써야할 지...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선생님, 늘 제 기억속에 부모처럼, 언니처럼, 친구처럼 포근하게 기억되어지는 선생님의 존재는 참 그리움과 추억의 그림자였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문득 문득 지난 저의 삶을 돌이켜보며 남은 인생의 미래 계획을 세워 보곤 한답니다.

그동안 많은 생의 변화와 아픔과 기쁨들이 있었지만 선생님께 배운 대로 인내로, 사랑으로 늘 자신을 지키고 살아온 지난 날들 후회하지 않고 지금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책을 좋아했던 제가 한때 인생의 실망감과 절망속에 있을때 절대 내 감정들을 무엇으로도 표현하지 않으리라 맘먹고 현실만을 바라보고 고집하며 달려왔는데 어느덧 잠재되었던 나의 감정들은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샘솟듯 합니다. 앞으로 남은 생들 선생님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 늘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중략~

나는 오늘 24년 전 제자가 보낸 편지와 전화 한 통으로 붉은 가슴을 토해놓은 철쭉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보낸 편지를 여는 순간, 제자의 진솔한 진심어린 위로에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내리막길을 향해 내닫는 시간을 바라보며 무기력증과 허무감으로 힘들어 하는 제 자신을 탓하느라 머릿속은 날마다 무소유를 꿈꿔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교직에 대한 미련을 털어낼 수 있다는 생각, 아이들에게 더 이상 뜨거운 가슴을 줄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 마음을 비워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빈 그릇이 되어가고 있는 나의 안뜰을 풍성한 그리움으로 채워준 옛 제자의 밀어 앞에서 나는 다시 소녀처럼 꿈을 꾸려 합니다. 붉은 가슴 토해 놓은 4월의 철쭉꽃처럼 다시 붉은 정열을 상기시켜 준 제자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떠난 뒤에 그리움을 남기는 사람이 되자고 가르치던 말은 24년 뒤 다시 돌아와 일어설 힘을 주었습니다. 나의 가르침은 잠시였지만 작은 가르침을 크게 받아 들일 수 있을 만큼 큰 그릇으로 자란 제자들은 이제 내 마음의 쉼터가 되었으니,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가 보낸 그리움의 언어들을 마신 내 마음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시끄러워도 이 땅 곳곳에서 그리움을 남기는 아름다운 일을 업으로 삼고 오늘도 목이 아프도록, 아이들의 아픔과 좌절을 시린 마음으로 받아주는 선생님들의 소리없는 염려와 사랑으로 쑥쑥 커 가는 제자들이 있으니 힘을 내어 달립시다. 우리 아이들에게 떠난 뒤에 그리움을 남기는 선생님이 될 수만 있다면, 오늘 내가 오르는 언덕이 힘겹더라도 참아내야겠지요.

6학년 짜리 소녀가 졸업한 지 24년을 지나 30대 중반을 향하는 지금, 그리움의 편지로 흰 머리 희끗한 옛 선생을 다독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젠 제자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도반으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생각을 하니 내일은 더 씩씩한 걸음으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의 어린 왕자들이며 꼬마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4월의 철쭉보다 더 붉은 가슴으로 아이들을 품으렵니다. 떠난 뒤에 그리움을 남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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