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4월 22일자 신문에 보도된 “흡연고교생 폭행으로 체육관장 처벌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라는 기사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장면을 희곡의 인서어트(Insert)로 보고 넘어가기에는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가뜩이나 청소년 문제가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심지어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에게 반항을 예사로 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체육관장의 고교생흡연 지도에서 일어난 단순 폭행을 처벌로 일삼는다면 기성세대에 대한 권위에 도전하는 신세대의 무감각증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길을 마련하는 빌미만 제공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구세대간 질서 무너지면 학교 기강도 무너진다
요즘 학교사회에서 떠도는 유언비어 같은 유행어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교사집단에서 학교의 생활지도는 이미 물건너 갔다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학생의 잘못을 교사가 지적하면 그것에 순종을 하기보다는 반감을 갖고 되받아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어이없는 태도와 자신이 잘못을 한 현장이 목격되어져 교사의 지적을 받으면 그런 일이 없다고 예사로 거짓말로 둘러대는 야릇한 심리는 전자시대에 순간 포착을 노리는 센스와 같은 작용 때문일까하는 생각조차 든다. 손만 대면 반응이 일어나는 터치시대. 반응이 즉시 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 극단의 심리를 연상하게 한다.
예민한 반응을 일으키는 청소년시기라고는 하지만, 기성세대의 눈에 비치는 그들의 행동은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인해 윤리는 도외시되고 자기만의 이상국을 만들어 가려는 이기주의적 사고의 팽창은 더불어 살아가는 바람직한 사회에 역행하게 됨으로써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1차 세계대전 후의 히피족과 같은 증상이 아닌가 싶다. 기성세대라고 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하나 폭력의 정당한 한계점은 있기 마련이다. 고의적인 폭력이 아니고 선한 행위를 하면서 저질러진 우발적인 행위의 연속이라면 범죄로 몰라 기성세대의 권위를 실축시키기보다는 잘못된 행위에 대한 기성세대의 위상을 정립시키는 것이 더 밝고 맑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달려오는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람을 구하는 정의의 젊은이가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지만, 그에 반해 역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체육관장의 행위가 비록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폭력 아닌 폭행을 했다고 할지라도 바른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하는 과도기적 사회에서 처벌보다는 오히려 칭찬을 하여 더욱 더 좋은 길로 청소년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언론의 역할이 아쉽기만 하다.
바른 생각은 올바른 가정교육에서 시작
생각이 비슷하면 행동도 비슷하게 나타나기 마련이고, 바른 가정의 교육은 자녀의 올바른 행동과 말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지향하고 있는 방향은 정치적으로는 개혁을 부르짖고 사회적으로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상황이다. 그에 비해 학교는 지식정보화 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하지만, 지식의 바탕에 있어야 할 학생들의 인성교육은 생활지도의 부재 아닌 부재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이런 사례가 바로 담배를 피워서 걸려도 자기들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타인의 폭행으로 합리화해 버리려는 생각이 신문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여기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