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어느 달력에는 ‘세계노동자의 날’이라 적혀있고, 또 어느 달력에는 ‘근로자의 날’이라 적혀있다.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지 않지만, 교사와 공무원은 출근을 해야 한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선생님, 왜 5월 1일에 쉬지 않나요? 선생님들도 노동자, 아니 근로자라고 해야 하나요?(노동자와 근로자는 어떻게 다르지?) 어쨌든 선생님들도 일하고 월급 받는 분들이니 쉬면 우리도 학교 하루 안 나오고 좋을 텐데, 얘들아 그렇지?”
지난 주 어느 반에서 수업 중 받은 푸념 섞인 한 학생의 질문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면서 그냥 웃고 말았지만, 퇴근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피식 웃고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싶었다.
얼마 전 교장실에서 학년회의 중, 필자가 “학기 초라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습니다. 정말 담임교사의 일은 중노동(重勞動)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발언을 했더니, 교장선생님이 대뜸 용어 선택을 가려하라며 일침을 가해왔다.
세상에, 지금이 3공, 5공시대도 아니고,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교사를 노동자라 칭하면 아직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하지 그럼 뭐라 한단 말인가?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 하면 ‘일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더군다나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라 해놓고, 정작 가르치는 일은 노동(일)이 아니고, 교사는 일하는 사람, 곧 일꾼(노동자) 아니라 하니 학생들이 의아하게 생각할밖에.
서울지역 교장협의회는 ‘스승의 날이 교육자의 노고(勞苦)를 위로하는 행사가 아니라 해마다 선물이나 촌지수수 문제를 부각시키는 바람에 부작용이 더 크다며 스승의 날을 자율휴업일로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5월 15일, 대부분의 학교가 문을 닫는다.
누가 ‘스승의 날’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원하지도 않은 스승의 날을 만들어놓고, 마치 도마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듯, 이맘 때가 되면 단골메뉴로 촌지 운운하며 마치 교사가 비리와 부정부패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떠들어댄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스승의 날이었지만,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그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이 정도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면, 뜻 깊게 보내라고 쉬는 것이 아니라 촌지수수를 막기 위해 학교 문을 걸어잠그는 것이라면 스승의 날을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 말로는 ‘군사부일체’하면서 걸핏하면 장대 끝에 올려놓고 흔들어대기 일쑤다. 스승 대접 안해줘도 좋으니 차라리 노동자 대접이라도 확실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5월 15일,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며 부끄럽게 쉬느니, 차라리 5월 1일 교육노동자로 당당히 하루를 쉬면서 노동의 신성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