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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그 딸에 그 어머니

계절의 여왕 5월의 첫 목요일 화창한 봄날 오후 네 시쯤 되었을 때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찾으셨습니다. 교장실에 갔더니 자리에 정성껏 손수 만든 딸기쥬스와 토마토, 참외, 수박 등이 과일그릇에 예쁘게 담겨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더니 전날 긴장으로 인해 코피가 계속 나 시험을 칠 수 없는 상태지만 응급조치를 해 양호실에서 시험을 무사히 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 고마워 가져왔다고 하네요.

며칠 전 양호실에서 시험을 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그 학생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막으며 안쓰러울 정도로 힘들게 시험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대비해 병원에 응급치료를 할 수 있도록 긴급요청을 한 상태에서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뒤에 안 일입니다만 연락을 받은 어머니께서는 학교 밖 담에서 교실을 향해 시험 끝날 때까지 시험 잘 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 딸에 그 어머니였습니다. 3학년 4반 엄지혜 학생은 자기 반에서 1등을 하는데 위급한 상황인데도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는 것을 마다한 채 시험을 치려고 고집하였습니다. 지혜 학생의 집념과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기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채 한 번밖에 없는 3학년 중간고사를 놓칠 수가 없어 강한 인내심으로 잘 이겨낸 지혜 학생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의지와 인내력이 부족한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본과 도전의식을 갖게 해준 것 같아 흐뭇합니다.

지혜 어머니도 대단합니다. 무사히 시험을 치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과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한 것을 보면 그 어머니의 따뜻함이 절로 느껴집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정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특히 지혜 엄마의 자식에 대한 따뜻한 정과 사랑은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어머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덕스러운 성품을 가지고 자식과 타인을 위하여 유익한 행동을 하는 좋은 어머니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학교에는 지금 어느 학교에도 찾아보기 힘든 푸른 등나무가 교실 앞에 길다랗게 줄을 서 있는데 청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포도모양의 보랏빛 꽃이 푸른 잎 사이로 수놓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푸른 꿈, 푸른 마음을 가진 푸른 학생들의 집념, 의지, 인내 등 아름다운 품성들이 보랏빛 포도송이로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뜻이 있는 음식이라 배가 부른 상태지만 포도쥬스 한 잔, 토마토 하나, 참외 한 조각, 수박 한 조각을 골고루 맛을 보았지요. 이걸 먹는 순간 백운소설의 작가 이규보 선생님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위심시(違心詩)’ 12구를 지었는데 ‘인간의 자질구레한 일 한결같이 못해서 툭하면 마음에 어그러져 마땅치 않네. 젊은 나이 때도 가난하면 아내조차 깔보고. 늙어도 녹만 두터우면 기생도 따른다. 대개 놀러 가는 날에는 비가 내리고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때는 날씨가 화창하다. 배불러 밥을 물리면 맛있는 고기를 만나고....’ 배불러 밥을 물리면 맛있는 고기를 만나 먹지도 못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는 이규보 선생님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어느 여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의 주인공 강 선생님과 함께 울산에서 유명한 고디탕 원조집에서 특별히 준비한 고디탕을 먹고 왔는데 얼마 안 있어 동창회 회장님과 총무님이 개교기념일에 학생들에게 나눠 줄 빵과 우유를 가져왔기에 우유를 한 잔 마신 뒤에 연이어 세 번째 이런 후한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또 한 선생님께서 김밥을 가져왔네요. 배불러 밥을 물리니 빵과 우유를 만나고 이어 쥬스와 과일을 만나고 또 김밥을 만나니 그날만큼은 분명 행복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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