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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스승보다 제자가 더 훌륭하게 되었을 때를 이르는 말로 筍子(순자)가 쓴 '靑出於藍而 碧於藍(청출어람이 벽어람)이요, 氷出於水而 寒於水(빙출어수이 한어수)'라는 글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를 직역하자면,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제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스승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이는 부모가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내가 가르친 제자가 사회에 나가 자기 직분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그 기쁨은 실로 형언하기가 어렵다. 그러기에 교사들은 오늘도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청출어람의 결실을 얻기 위해 모든 고난을 감수해가며 묵묵히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는지도 모른다.

리포터 또한 17년 간 교직 생활을 회고하건대 청출어람의 훌륭한 제자들을 무수히 보아왔으니, 그 중에서도 유독 K 군의 사연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적인 사례로 남아 있기에 소개해 본다.

지금으로부터 13여 년 전, 리포터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고학(苦學)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던 K란 학생이 있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터미널에서 껌과 음료수 등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아주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었다. 이런 까닭에 K 군은 방과후 주유소와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K 군은 언제나 싹싹하고 밝은 얼굴로 아침 일찍 등교하여 교실 청소를 하는 부지런한 학생이기도 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K 군 때문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당시 학교의 규정으로 볼 때 수업료를 완납해야만 졸업 사정이 가능한데 K 군의 마지막 수업료가 안타깝게도 미납상태였던 것이다. 가정 형편상 미납된 수업료를 내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규정을 무시하고 졸업을 시킬 수도 없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협의 끝에 선생님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성금을 걷어 K 군의 수업료를 대신 납부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K 군은 가까스로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K 군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본인이 직접 벌어서 수업료를 내기 전까지는 절대로 졸업장을 받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선생님들께 폐를 끼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는 수없이 여러 선생님들께서 선생님들의 성의를 지나치게 사양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타일러 겨우 졸업장을 받게 했다.

고교 졸업 후,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K 군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여전히 가난 때문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결국 K 군은 돈을 벌어 집안을 돕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간 반드시 자기가 목표한 대학의 법학과에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학교를 졸업한 지 몇 달 후, 갑자기 K와의 연락이 끊겼다. 가끔 버스터미널에서 음료수 행상을 하시던 어머니께 K 군의 안부를 묻곤 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K 군의 어머니마저도 뵐 수 없게 되어 자연스레 K 군과의 연락이 두절된 것이었다. 여러모로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끝내 K 군의 소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리고 나서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그 학교를 떠나 이곳 학교로 전근을 왔고 내 머리 속에서 점차 K 군의 기억도 흐릿하게 지워져갈 무렵,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화를 통해 먼저 근무하던 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K 군의 소식은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K 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소위 말하는 달동네에 방 한 칸을 얻어 생활하면서 어머니는 파출부로, K 군은 은행원과 회사원들을 상대로 구두닦이를 하면서 대학입학 검정고시를 치러 드디어 서울 소재 H대학교 법대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K 군은 법대를 졸업하면 꼭 모교를 찾아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겠다는 내용으로 편지는 끝을 맺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더니 K 군이 정말 이 옛말을 실증해 보인 것이었다.

K 군! 지금은 소망대로 법대를 졸업한 뒤 유능한 변호사가 되어 소외된 자들을 도우며 아주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교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K 군과 같은 장한 제자가 무수히 배출되어 청출어람의 물줄기가 힘차게 솟구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청출어람 청어람'의 사례를 소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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